[C컷] 가난했지만 멋이 있던 그 시절
우산을 쓴 멋쟁이 아가씨 옆으로 스치던 양복 신사가 돌아본다. 한영수 사진가가 찍은 이 사진은 놀랍게도 1950년대 서울 명동의 모습이다. 전쟁이 끝나고 오래지 않아 모두 먹고살기 빠듯하던 그 시절에도 멋쟁이는 많았다.
1950년대가 전부 배고프고 가난한 줄로만 알다가 그렇지 않음을 사진으로 보여준 사람이 사진가 한영수였다. 화창한 어느 봄날 벚꽃 구경을 나온 시민들, 한겨울 창경궁 앞에서 썰매를 타는 소년들과 얼음낚시를 하는 한강의 풍경까지.
누구에겐 행복한 추억이거나 역사이고 소중한 기록이 되는 흑백 사진들은 원근법의 삼각형 구도로 배치되어 보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림을 배웠고 사진을 외국 사진 책으로 독학하다가 훗날 1세대 광고사진가로 이름을 날리던 한영수는 생전에 이런 사진들을 엄청나게 찍어 놓고 발표하지 않았다.
사진가 한영수는 다큐멘터리 사진연구회인 신선회에서 활동하다가 1966년에 광고 스튜디오를 열고 상업사진가로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기업이 생기고, 기업이 홍보와 광고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광고사진가도 필요했던 시기였다.
광고사진가로 활동하기 이전에 찍던 한영수의 흑백사진들은 현재 책으로 나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생전에 그가 직접 골라 제작한 사진집(삶,1987)도 있었지만, 제대로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사진가의 딸 한선정(한영수 문화재단 대표)씨가 만든 책을 통해서였다.
헝가리에서 디자인 유학을 떠나있던 때에 부음을 듣고 귀국한 한 씨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필름을 정리하면서 당장 ‘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 씨도 그동안 힘들고 배고픈 시절이라고만 알던 그 시대에도 멋과 낭만이 가득했고, 아버지는 자신만의 앵글로 그 시절을 기록해왔음을 알았다.
책의 편집과 제작은 물론 필름 사진의 디지털 작업을 모두 한선정 대표가 직접하고 있다. 한 대표는 “흑백이라도 색 보정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빛이 날 때가 있기 때문”에 누구한테 맡기지 않는다고 했다. 책 한권을 만드는 2년간 보통 3천 컷을 스캔하면 그중 5%의 사진들만 책에 실린다고 했다.
이제껏 발표된 한영수의 네 권의 사진집은 모두 광고사진가 이전에 찍었던 작업들이다. 이제껏 시대의 풍경-’서울 모던타임즈(2014)’, 어린이-’꿈결 같은 시절(2015)’, 한강- 시간 속의 강(2017)’, 여성들-’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2020)’이 주제로 묶어 냈다. 한 씨는 앞으로 세권이 더 나올 예정으로 거리 풍경(5집), 그 시절 물건들(6집), 시장 모습(7집) 등이 준비 중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사진을 묶어 딸이 만든 책들은 천으로 표지를 감싸고 직접 프린트한 사진을 붙이고 주제에 맞는 컬러를 골라서 제작해왔다. 국문과 영문으로 쓰인 덕분에 해외에서도 소개되어 책과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경기도 여주의 ‘수연목서갤러리’에서 개관전으로 14점을 연말까지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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