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여신'에 빠진 中…"평균월급 196만원" 한탄 나오는 이유[중대한說]

오진영 기자 2023. 9. 16.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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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150조원 규모의 가전시장을 가진 중국은 글로벌 IT시장의 수요 공룡으로 꼽힙니다. 중국 267분의 1 크기인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호령하는 TSMC의 본거지입니다. 미국·유럽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과 어깨를 견주는 것은 물론 워런 버핏, 팀 쿡 등 굵직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죠. 전 세계의 반도체와 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권을 이끄는 중국·대만의 양안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중국과 대만 현지의 생생한 전자·재계 이야기, 오진영 기자가 여러분의 손 안으로 전해 드립니다.

황첸첸 화웨이 연구원 겸 북경대 교수. / 사진 = 바이두

"반도체 여신이 부당한 탄압에 시달리는 중국 반도체를 승리로 이끌어 줄 겁니다."

세계 반도체를 쥐락펴락하는 AMD의 대만계 최고경영자(CEO) 수 지펑(리사 수)이 아니다. 최근 중국을 뜨겁게 달군 '반도체 여신'이라는 별명의 주인공은 화웨이의 여성 연구원 황첸첸(34)이다. 젊은 나이에도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진두지휘하며 칩 적층 기술 부문에서 우수한 실적을 냈다. 300만 위안(한화 약 5억원)의 인센티브와 런정페이 화웨이 CEO의 극찬은 덤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황첸첸 외에도 '반도체 영웅'이 잇따라 나온다. 중신궈지(SMIC)·칭화유니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종사하면서 첨단 기술을 개발하거나, 해외 기업의 제의를 뿌리치고 중국 반도체 발전을 위해 힘쓰는 애국자들이다. 다른 인재들도 영웅을 보고 중국의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명령에 가까운 권고도 따라붙는다. 중국 반도체가 영웅이 필요한 난세에 놓였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이 반도체 영웅에 기대하는 3가지는 '이것'
/사진 = 조수아 디자인기자

15일 현지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14나노 이하 첨단 공정에서 성과가 잇따른다. 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에 탑재된 칩 '치린 9000S'가 대표적이다. 삼성과 타이지디엔(TSMC), 인텔 등 3개 회사만 생산할 수 있다고 알려진 7나노 칩을 중국이 독자 설계·생산·적용했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7나노 칩 개발은) 미국의 대중제재가 아무 효력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우수한 성능을 갖췄으면서도 전력 소비량을 크게 개선했다"고 자평했다.

중심에는 '반도체 영웅'들이 있다. 여성이거나, 해외 기업의 제안을 뿌리치고 귀국했거나, 나이가 젊은 업계 종사자들이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다. 하이엔드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한 여성 엔지니어 치우유징 신치커지 창업자나 컬럼비아 대학의 제안을 뿌리치고 귀국한 두링찌에 난징 반도체연구소 수석연구원, 삼성반도체 출신의 량멍송 중신궈지 CEO 등이 대표적 반도체 영웅으로 꼽힌다.

중국이 '영웅 만들기'로 노리는 것은 크게 3가지다. 중국 반도체의 위상 과시와 해외 중국인 인재들의 귀국 종용, 대중제재의 무력함 홍보다. 특히 중국은 2019년 미국의 대중제재 이후 '부당한 탄압에도 성과를 내고 있으니,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관영 인민일보는 "봉쇄 이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파괴당했지만, 중국 반도체는 재세계화에 성공하면서 기술 자립을 이뤄냈다"고 보도했다.

자국 인재가 늘어나야 낮은 국산화율을 개선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다. 중국 티엔펑증권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율은 30~35%, 반도체 칩의 국산화율은 15~20% 수준이다. 공산당이 2025년까지 72%의 국산화율을 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주류 의견이다. 한국이 3~4년 전 개발한 7나노 차량용 반도체를 올해 들어서야 50% 정도의 수율로 양산하기 시작했을 정도다.

해외 인재들의 귀국 역시 중국이 공들이는 숙원 사업이다. 중국은 기술이나 자본이 미국에 비해 뒤처지는데 인력까지 빼앗기고 있다. 현지 업계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22년간 미국에서 반도체 관련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력을 10만명 규모로 추산하는데, 이 중 과반수가 미국이나 유럽 업체에 취직했다. 올해 기준 중국 반도체업계 종사자 전체 수는 50만~60만여명으로, 약 10~20% 정도가 부족한 셈이다.
"영웅이 나온다는 건, 난세라는 뜻"…중국 반도체의 자성
청년 실업을 그린 만평. / 사진 = 바이두

현지에서는 중국 반도체가 영웅이 필요한 시기에 놓였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제재 이전 산업이 급성장하던 시기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영웅이 등장한 것 자체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지난 6~7월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50억달러(약 6조 60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으며, 올해 상반기 중국 상장 반도체 기업 146개 중 70%가 수익이 줄었다. 여기에 7나노 개발로 인한 미국의 추가 제재도 올해 안으로 현실화될 전망이다.

영웅화 작업보다는 근본적인 처우개선과 산업구조 내실화에 힘써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징웨이연구소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기업 종사자의 평균 월급은 1만 783위안(한화 약 196만원)으로, 미국(약 1136만원)은 물론 한국(300~400만원), 대만(250~300만원)보다 낮다. 매년 10만 명 이상의 인력이 모자라다면서도 석·박사 엔지니어가 아니면 실업을 걱정해야 하는 모순도 보인다.

현지 업계 종사자는 "조심스럽지만 중국 반도체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봉쇄나 장비 국산화율, 기술 수준이 아니라 인재들이 중국 기업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소수의 고연봉 인력에만 기댈 게 아니라 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인력 풀이 형성돼야 외부의 탄압이나 수요 침체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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