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K-무리뉴’의 경기를 보며 자본시장 생각하기

안재만 기자 2023. 9.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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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만 조선비즈 증권부장, ‘지금 부자들은 배당주에 투자한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 트렌드 2021(공저)’ 저자

최근 K리그 광주FC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광주FC는 K리그 구단 중 가장 적은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현재 3위에 랭크된 막내 시민구단이다. 유튜브에서 광주FC의 열악한 훈련 환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광주FC엔 내로라하는 스타급 플레이어가 없다. 하지만 스타는 있다. 바로 이정효 감독이다. 이 감독은 매일 밤 유럽 강호 구단의 스타일을 분석해 본인의 팀에 접목하고자 노력한다. 독특한 ‘약속된 플레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비수의 위치가 툭하면 바뀌는 등 다른 구단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플레이가 나온다.

이정효 감독은 선수 시절엔 무명이었지만, 지도력으로 인정받은 조제 무리뉴 감독과 닮았다는 이유로 ‘K-무리뉴’로 불린다. 광주의 홈구장엔 ‘K-무리뉴’를 칭송하는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다. 이 역시 K리그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다.

개인적으로 이 감독은 K리그 승강제의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K리그를 보지 않는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현재 K리그는 전체 12개 구단 중 꼴찌는 자동으로 2부리그(K리그2)로 떨어지고 11위와 10위는 플레이오프를 거쳐 강등 여부가 결정된다. 반대로 2부리그 상위권 팀들은 1부로 올라올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이 감독은 지난해 K리그2에서 1위를 차지해 1부로 올라왔고, 1부에서도 드라마틱한 성적을 내는 상황이다. 승강제가 없었으면 이정효라는 감독은 지금보다는 훨씬 늦게 발견됐을 것이다. 승강제, 바로 경쟁이 주는 매력이다.

같은 생각을 요즘 프로야구를 보면서도 한다. 지금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일부 팀은 경기를 설렁설렁하는 느낌이다. 키움증권이 후원하는 키움 히어로즈도 만약 2부리그 강등이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경기력이 나았을 것이다. 경기를 볼 때마다 “저 선수들의 실력을 감안하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오해라면 미안하다.) 프로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경쟁이 밑바닥에 깔려있지만, 승강제가 경쟁의 강도를 더해준다. 잔혹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지금 K리그2의 수많은 시민구단(부천FC, FC안양, 김포FC, 충북청주 등) 감독이 또 다른 이정효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2부 리그 감독들은 무엇을 노릴까. 더 좋은 성적을 거둬 실력을 입증받고 싶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명예이고, 두 번째가 돈이다.

<YONHAP PHOTO-3739> 지시하는 이정효 감독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3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1 울산 현대와 광주FC의 경기에서 광주 이정효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2023.9.3 yongtae@yna.co.kr/2023-09-03 18:36:10/ <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 생각을 그대로 자본시장으로 옮겨오고 싶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 아니면 명예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어떤가. 돈, 명예를 노리지 않는 CEO야 없겠지만, 대부분 속에 숨기고 있다. 스톡옵션 잭팟을 터뜨렸다고 언급되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경영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오너일가 뒤에 숨으려고 한다.

왜 그럴까. 일단 돈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우리는 돈을 추구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것이 많다. 일단 스톡옵션을 포함해 경영진의 매도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실적을 개선하고 신사업을 잘 설계해 주가가 오르면, 그 이익을 경영진이 나눠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매도자를 지나치게 색안경 끼고 바라보고 있다. 경영자들이 “주식 팔면 욕먹을 텐데 그냥 적당히 하고 임기를 끝내자”고 생각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명예도 그렇다. 우리는 회사를 잘 이끄는 훌륭한 경영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데 인색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결국 잘하는 CEO를 부각시켜줘야 할 것 같다. 실적을 내면서 미래 신사업을 잘 설계하고, 안팎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CEO를 찾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다. 그래서 이들이 더 좋은 기업으로 스카우트되고, 그들의 성공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주가에 지나치게 무관심하고 실적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며 안팎으로 꼰대질만 한다고 지적받는 CEO는 창피를 받아야 한다. 증시를 CEO의 역량에 따라 1부, 2부 리그로 나눌 수야 없겠지만 말이다. ‘지적질’을 통해 경영진이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게끔 해서 주주들에게도 보상이 가는 자본시장, 축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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