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묻힌 금융정책 입법…기촉법·채무자보호법 등 스톱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금융정책의 입법이 사실상 마비 상태다. 금융 관련 법안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파행이 길어지면서다.
16일 국회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소관 법률안을 심사하는 정무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지난 7월4일 이후 두 달 넘게 열리지 않고 있다.
당시 민주화유공자예우법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무위 소위에서 강행 처리하고 여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금융 관련 입법 논의는 올스톱 상태다.
지난 4일 정무위 전체회의가 열려 여야가 정무위 정상화에 뜻을 같이 하면서 금융 입법이 재개되는 듯 했지만 지난 12일 예정됐던 법안소위는 돌연 취소됐고 향후 일정은 불투명한 상태다.
이에 따라 당장 한 달 후 일몰 예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폐기로 인해 부실기업이 선제적이고 신속한 채무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워크아웃 제도가 자칫 중단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기촉법은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 절차인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법이다. 채권금융기관의 75% 이상이 동의하면 채무 유예·탕감과 추가 자금투입 등의 지원을 해주는 대신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제도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지난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기촉법은 현재까지 다섯 차례 연장됐으며 오는 10월15일 일몰 기한이 또다시 도래한다. 이에 따라 기촉법 유효기간을 연장한 개정안이 정무위에 제출돼 있지만 법안소위에서 논의가 스톱되면서 워크아웃 제도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중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20여년 간 워크아웃 제도를 통해 기업 정상화에 있어 많은 성과를 냈고 한계기업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일몰 전 기촉법 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경영환경 악화로 이자도 갚기 어려운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개인 채무자의 연체이자와 추심 부담 완화를 위해 마련한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개인채무자보호법) 제정안도 처리도 시급하다. 고금리 장기화 속 개인 차주들의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어 서둘러 처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채무자의 권익 증진과 신속한 재기를 지원하기 위해 금융위가 마련한 정부 제정안으로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됐다. 올해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주요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됐다.
채무조정, 연체이자 부과, 추심 등 연체 이후 일련의 과정에서 채무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것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채무를 연체한 채무자가 채무상환이 어렵다고 판단한 경우 채권금융회사에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채무조정요청권'이 신설되고 금융사는 채무자의 권리에 중대한 영향이 있는 기한의 이익 상실, 채권 양도, 주택경매 진행 전 채무자에게 채무조정 기회를 통지할 의무가 생긴다.
또 채무 중 일부만 연체돼도 원금 전체에 연체 가산이자를 부과하던 현재 방식을 바꿔 상환기일이 도래한 연체 금액에 대해서만 이자를 부과할 수 있게 연체이자 부과 방식도 바뀐다.
예컨대 2000만원을 1년 간 연 6% 금리에 만기 일시상환 방식으로 대출받았다가 월 10만원의 이자를 연체했다고 가정할 경우 현재는 원금 2000만원 전체와 밀린 이자 10만원에 대해 연체 이자가 붙지만 앞으로는 연체 이자 10만원에 대해서만 가산이자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추심총량제, 연락제한요청권, 추심 유예 등을 통해 과잉추심 등 채무자에게 불리한 추심관행을 개선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겨 있다.
금융안정계정 설치를 골자로 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도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발이 묶여 있다.
금융안정계정은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회사들이 부실화되기 전에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2009년 은행자본확충펀드와 금융안정기금, 2020년 금융안정특별대출 등 과거에 있었던 금융회사 자금지원 체계를 상설화한 것이다.
금융사에 부실이 발생하면 사후적 지원을 하는 현재 방식과 비교하면 금융권 전반으로 리스크가 확산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부실 대응·정리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은 예보의 예금보험기금에 금융안정계정을 설치하고 그 사용목적을 '금융제도의 안정성 유지를 위한 자금지원'으로 규정했다.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예금자보호법을 적용받는 다수 부보금융회사의 유동성이 경색되거나 재무구조 개선 또는 자본확충이 필요한 경우 예보는 부보금융회사와 지주회사에 금융안정계정을 활용한 자금지원을 할 수 있다.
금융회사가 자금지원을 신청하면 예보 심사와 금융감독원 협의, 예금보험위원회의 의결 등을 거쳐 자금지원 여부와 내용을 결정하는 구조다. 자금지원을 받는 금융회사는 자금지원 신청시 자금상환계획을 제출하고 반기별로 그 이행실적을 예보에 제출해야 한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적기에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사 부실을 사전 예방하는 금융안정계정 도입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phite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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