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친구'가 되려는 사우디·UAE의 야망[PADO]
[편집자주] 이제 사우디와 UAE의 움직임을 모르고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어마어마한 석유자산에 더해 지금까지 벌어들였던 페트로달러로 만든 거대 국부펀드, 거기에 유라시아대륙의 중앙에 자리잡은 지리적 위치 등을 활용해 국제정치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이 '탈석유' 경제로 이행하면서 산유국과 서방의 전통적인 유대관계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당분간 석유를 계속 사줄 주 고객은 중국, 인도 등 신흥산업국가와 '글로벌 사우스'가 될 것입니다. 부자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기존의 친미 일변도에서 중국, 인도 등으로 외교를 다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빈살만 같은 젊은 야심가들은 다극체제 등장의 조짐이 보이는 이때에 스스로 하나의 극을 형성하겠다고 합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전세계에서 고위관리들이 우크라이나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몰려들었을 때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달성되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같은 주제지만 규모는 좀 더 작았던 코펜하겐 회의에서 프랑스는 사우디측에 다음 번 회의 개최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중국과 함께 이른바 '글로벌사우스'에 속하는 국가들이 유럽 밖에서 개최될 때 좀 더 마음 편하게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빈살만 왕세자는 그 요청을 이행했다. 외교관들에 따르면, 그는 중국측에 대표를 보내달라고 하는 등 회의준비를 직접 챙겼다. 총 42개국이 사우디 젯다에서 열리는 이 회의에 대표를 파견했는데, 이들 나라 중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정하라는 서방의 압박에 저항해왔던 나라들도 있었다.
회의가 다 끝날 때까지 별다른 논의의 진척은 없었다. 있었다면 중국이 차기 회의에도 계속 참석할 수 있다는 의사를 넌지시 비친 것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빈살만 왕세자에게 이 이틀간의 회의는 의심할 여지없는 성공이었다. 이번 회의는 이 젊은 왕세자에게 자신의 세계관을 세상에 펼쳐보일 완벽한 무대였다. 그가 내비친 사우디 왕국의 꿈은 그 영향력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뻗치는 신흥 강대국의 꿈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석유가 넘치는 걸프국가들의 더 높은 야심과 솟아오르는 자신감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야심과 자신감은 작년의 에너지가격 급등 이후 더욱 커졌다. 이 걸프국가들은 일극(一極)을 넘어 다극(多極)으로 블록화되고 변화무쌍해지고 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자신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제 갈 길을 찾아가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걸프만의 두 권력원천인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이 지역의 지배적인 무역 허브인 아랍에미리트UAE인데, 두 나라 모두 눈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리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예측불허의 세계정세 흐름을 불안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반해, 사우디와 UAE는 이러한 예측불허의 흐름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 있다. 그들은 풍부한 자금력과 석유자원을 활용해 전통적인 서방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낮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모두 자신만만하고 자기주장 강한 지도자들이 보통 그렇듯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양자택일의 미국 요구를 더 이상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UAE의 지도자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은 여러 해에 걸쳐 이 작은 나라의 군사력과 자금력을 동원해 나라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큰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마찬가지로 빈살만 왕세자는 신속히 수천억 달러를 투입해 사우디 발전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자신의 나라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G20의 정상급 국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서로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경쟁하는 이 두 나라는 폭넓은 외교 네트워크를 엮어내면서 국제무대에서 자국을 '모두의 친구'로 자리매김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데 열심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부분적으로 통상환경의 변화와 지정학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오랫동안 걸프지역에서 역외 세력으로서 지배적인 입지를 갖고 있었던 미국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인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현재와 같이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리스크가 아닌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극체제가 등장하면 자신들이 거기서 하나의 극(極)을 맡을 수 정책과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런던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소(IISS) 지역안보팀장인 에밀 호케이엄의 말이다. "그들은 매우 기회주의적이고, 따라서 그만큼 유연하고 거래지향적 접근법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완전히 한 편에 서주기 바라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계속)
김동규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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