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트 원조’ 美도 한수 배워가는 심장 명의
전 세계 의사들이 질병 진단과 치료 기준으로 삼는 학술지가 있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이다. 논문 영향력 지수가 의과학 학술지 통틀어 1위다. 논문 하나 게재하면, 의사들은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 그 NEJM에 눈문을 6편 쓴 한국인 의사가 있다.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다. 한국인 최초 NEJM 논문 게재로 시작해 이제는 세계 최다 게재 의사가 됐다.
박 교수는 심장 관상동맥 협착증 스텐트 치료 국제 기준을 바꿨다. 각 나라 의사들이 그 기준을 따른다. 스텐트는 좁아진 관상동맥을 금속 그물을 넣어 넓혀 놓는 시술이다. 전신 마취 없이 팔이나 다리 동맥을 뚫고 올라가 시술한다. 국내서 한 해 13만여 명이 관상동맥 협착증으로 급성 심근경색증이 발생하고, 스텐트 시술이 7만여 건 이뤄진다.
이 시술을 한국에서 최초로 한 이도 박 교수다. 과정은 영화와 같다. 1996년 미국에서도 생소했던 스텐트 시술에 참여한 박 교수는 ‘의료계 문익점’처럼 스텐트를 빌려 국내로 들어와 처음 시술했다. 그때 관상동맥 협착증은 가슴을 열어 문제 혈관을 갈아끼우는 관상동맥 우회술이 유일한 치료였다. 흉부외과 의사들은 “불법 치료”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스텐트 시술은 박 교수를 신호탄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자리 잡았다.
당시 스텐트 시술의 약점은 30~40%에 이르는 재협착이었다. 박 교수는 스텐트에 항암제를 바른 약물 코팅 스텐트를 쓰면 재발률이 15~20%로 줄어드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 논문으로 NEJM에 처음 입성했다. 이후 전 세계 심장내과 의사들이 약물 코팅 스텐트를 쓴다. 지금은 재협착률이 5% 정도로 떨어졌다.
관상동맥은 세 줄기가 있는데 두 줄기는 시작 부위에서 같이 붙어서 굵게 나온다. 이를 좌간동맥 주간부라고 부른다. 여기에 협착이 생기면 워낙 위험한 부위여서 무조건 수술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주간부에도 스텐트를 넣고 수술 환자와 결과를 비교했다. 결론은 스텐트나 수술이나 효과가 같다는 것이었다. 간단한 스텐트 시술을 하면 되지, 굳이 가슴을 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심장병 치료 판도를 바꾼 이 연구가 NEJM에 게재되면서, 박 교수는 세계적 명성의 심장내과 의사로 등극했다. 다른 대학 병원 수술을 앞둔 유명 VIP 환자가 몰래 박 교수에게 와서 스텐트 시술을 받은 일화도 있다. 스텐트 원조인 미국 의사들도 그의 노하우를 배우려고 매년 서울아산병원을 찾는다.
박 교수는 관상동맥이 좁아졌다고 무턱대고 스텐트를 넣는 데 반대한다. 그는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어도 협착 전과 후의 혈류 속도를 재보면 별 차이가 없이 피가 잘 흐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때는 스텐트를 넣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은 혈류 검사 도입 후 스텐트 삽입 시술이 40% 정도 줄었다. 박 교수는 “관상동맥 협착증이 있어도 요새는 약물이 발달해서 스텐트 삽입 대신 약물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관찰해도 되는 환자가 상당수”라며 “이제는 스텐트 시술에 신중을 기할 때”라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출신인 박 교수는 1979년 세브란스병원 인턴을 하던 때에 조선일보에 ‘의창’이라는 의학 칼럼을 썼다. 갓 의사가 된 일개 인턴이 일간지 의학 칼럼을 쓴 파격이었다. 문학청년으로 그만큼 글재주가 있었다. 최근 박 교수는 500여 쪽짜리 포토 에세이(’그래서 우리의 삶은 반복되어도 싱그럽다’ 궁편책 펴냄)를 출간했다.
박 교수는 조선일보 의학 유튜브 ‘명의의 전당’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해가 되면 안 되며,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되레 위험 부담이 커진다”며 “환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최적 치료법을 찾아내 환자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것이 의사의 책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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