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03] 패션 매장의 소파
패션 매장의 구성은 간결하다.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이미지, 즉 상품 진열, 최소한의 업무와 수납·탈의를 위한 공간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근래에 매장 한편에 쾌적한 소파를 배치한 곳이 늘어나고 있다. 고급 매장일수록 더하다. 여성과 같이 갔지만 쇼핑이 다소 지루한 남성들을 위한 것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처럼 오랜 시간 쇼핑이 지속될 때 그런 필요는 커진다. 앉을 자리는 남성들이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두리번거리며 찾는 목표물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 관찰해본 결과 거의 예외 없이 소파에 앉아있는 남성을 마주친다. 여성이 소파에 앉아 있고 남성이 쇼핑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 까닭에, 남성들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기능적 쇼핑을 하는 반면 여성들은 목적성 쇼핑을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꼭 필요한 물건이 없더라도 매장을 다니며 살펴보는 일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근래에는 단순히 소파 하나가 아닌, 아예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거실이나 서재처럼 꾸미고 신문이나 잡지, 아트북 등을 구비해 놓는 경우도 많다. 2021년 LVMH그룹에서 16년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관한 파리의 사마리틴(Samaritine)은 종전 어느 백화점보다 공간을 여유 있게 사용하고 있다. 상품 전시 영역 중간중간에 널찍한 면적을 확보, 다양하고 특색 있는 테마로 장식해 놓았다. 이런 공간에서 각종 행사와 팝업도 하고, 계절별 스토리를 도입한 디스플레이도 선보인다.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소품을 배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숨겨진 공간을 찾아내고 짧은 틈새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안목과 여유는 이용자의 몫이다. 남성을 편하게 앉히고 나면 여성도 좀 더 여유 있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오프라인 상점들이 초토화되어 가는 요즘, 이처럼 실제 매장으로 고객을 유혹할 수 있는 장치는 무척 중요하다. 가끔 디자인 수업 중 학생들이 패션 매장을 설계할 때 한구석에 소파를 배치하고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경우를 본다. 시각적 결과물 이전에 공간 이용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디자인에 반영하는 안목을 갖춘, 대부분 A학점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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