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김윤아 논란, 로마 황제를 기억하라

원선우 기자 2023. 9.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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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자우림 멤버 김윤아 소속사가 13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정치적 입장을 피력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뉴스1

후쿠시마 원전 방류가 개시된 지난달 24일, 가수 김윤아(49)씨는 자신의 SNS에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고 썼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 12일 문화자유행동이라는 시민 단체 행사에서 김씨를 ‘어떤 밴드의 멤버’로 지칭했다.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친여 네티즌들은 김씨에게 좌표를 찍고 집단 악플을 달았다.

“정치 권력을 가진 공인이 한 연예인을 공격하는 모습은 졸렬”(이원욱) “예술가 한 사람의 생각을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겁박”(탁현민).... 야권(野圈)의 김씨 옹호는 얼핏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들의 열망이 북한에는 닿지 않았던 전례를 생각하면, 정파적인 단순 반사일 뿐이다. 탁씨는 김정은 측근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밝혀주는 심야 열병식이 더 감동적”이라고 조언한 인물이다.

반면 한 여당 의원의 말엔 음미할 구석이 있다. “연예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혔다 하더라도, 공인인 정치인이 그것을 공격하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이다. 연예인의 발언이 정치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정치인이 부족한 탓이다.”(김웅) 연예인의 공적 발언을 당연히 대중이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선출 권력이자 공인(公人)인 김 대표가 이를 콕 집어 비판한 발언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 마오쩌둥의 중공, 스탈린의 소련, 호메이니의 이란, 푸틴의 러시아, 그리고 김정은의 북한. 이념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예술의 자유를 검열한 권력자들의 나라다. 여기에도 물론 미술·음악·시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예술이 아니라 프로파간다(정치 선전물)라고 칭하며, 창작(創作)이 아니라 제작(製作)된다고 말한다. 김 대표도 “자유가 없는 문화·예술은 권력의 찬양 도구”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 예술인의 발언이 아무리 비과학적·감정적·선동적일지언정,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포함시켜야 옳다.

영화배우 이영애씨가 최근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기부금을 낸다고 하자 친야 지지층이 벌 떼 공격을 했다. 그렇다고 야당 대표가 ‘독재 찬양’ 운운하며 이씨를 비판했나. 사유 재산을 어디에 처분하든,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이씨의 자유에속한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76~138)는 학문과 예술에도 통달한 만능 교양인이었다. 자신의 학식에 자부심이 넘쳤던 황제는 당대 석학들과 공개 토론을 즐겼다. 늘 황제의 승리였다. 아무리 강직한 학자도 서슬 퍼런 권력자 앞에서 제대로 반론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 학자는 “토론이란 등 뒤에 30만 대군을 거느린 사람이 늘 이기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현제(賢帝)라는 칭송을 받았던 하드리아누스조차 문화에 군림하는 순간 조롱거리가 됐다. 하물며 현대의 정치권력에서야. 문화를 대하는 집권 여당의 태도가 더 세련되기를 희망한다.

고대 로마 제국 최전성기를 이끈 오현제(五賢帝) 중 한 사람이었던 하드리아누스(76~138) 황제의 흉상. 학문과 예술에 통달한 그는 자타공인 문화 애호가였다. 그러나 황제의 신분으로 학자들과 토론에 나서는 순간 조롱의 대상이 됐다./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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