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21] 공원과 벤치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선택한 곳이 공원 근처였다. 내게 공원은 집의 확장이고 뒷마당이기 때문이다. 글이 안 풀리거나 지치면 공원 벤치에 앉아 산책하는 사람과 강아지를 관찰하는 게 취미인데, 1번부터 5번까지 좋아하는 벤치의 순위가 있을 정도다. 노을이 질 때 앉는 벤치, 강아지를 관찰하기 좋은 벤치, 넉넉한 할머니 품 같은 벤치가 따로 있다.
몇 년간 호수공원에는 내 체감상 100개가 넘는 벤치와 그네 의자가 생겼다. 하지만 산책로가 많지 않아 종종 교통 정체처럼 병목 구간이 생긴다. 그때마다 벤치에 앉아 이 거대한 호수를 가로지르는 더 많은 다리와 샛길을 상상했다. 다양한 다리와 샛길이 덩어리처럼 뭉친 사람들을 여러 갈래로 분산시켜, 새벽 바다 같은 한적함으로 서서히 풀어놓는 상상 말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특별한 벤치에 앉은 적이 있다. 벤치 뒤에는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한 남편의 글이 적힌 동판이 있었는데, 이것이 공원 내 시설 유지와 설치를 위해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세워졌고, 이렇게 세워진 벤치의 숫자가 수천 개가 넘는다는 건 훗날 알았다. 직장인 시절, 막막할 때 앉아 쉬던 정동 길의 벤치와 마감 때 머리를 식히기 위해 앉던 여의도 공원의 벤치가 떠올랐다. 맨해튼의 설계자 ‘로버트 모지스’는 맨해튼 중심에 큰 공원을 짓지 않으면 향후 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보다 명확한 혜안이 있을까. 벤치에 앉아 담소하거나,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달리는 시민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공원과 벤치에 진 빚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건축가 유현준 선생이 ‘벤치 프로젝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통의 추억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센트럴 파크의 벤치가 떠오른 이유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가 아닌,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벤치가 ‘사회행복자본’이 되기 때문이다. 삶에서 누리는 정말 좋은 것들은 공짜이다. 하늘, 햇빛, 바람, 그리고 공원과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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