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 효능’ 비만치료제, 美-유럽서 열풍…“미용 목적으로 쓰면 득보다 실”[글로벌 포커스]
일론 머스크 후기로 유명해져… 주사 한 대에 45만원에도 품귀
대부분 국가서 건보 적용 안 돼… "부자만을 위한 치료제" 비판
포만감 늘려 식사량 줄이는 효과… 설사-변비 등 부작용 위험도
1대에 45만원 초고가 비만주사, 내년 국내 들어온다는데… 미국에서 주사 1대 값이 45만 원에, ‘역대 최고 효능’이라고 알려진 비만치료제 위고비. 미국에 이어 유럽에서도 열풍이 불며 ‘부자들의 비타민’이란 비판이 나오지만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팔린다. 식이요법·운동과 병행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미용 목적으로 쓸 경우 부작용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한국에도 내년 상반기 상륙할 예정인 위고비는 비만 환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
● 美에선 위고비 주사 1대에 45만 원
위고비가 처음 출시된 미국은 세계 최대 비만치료제 시장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성인 42.5%가 비만(BMI 30 이상)이다. 비만 전 단계인 과체중 상태까지 포함하면 성인 10명 중 7명이 심각한 과체중 상태에 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비만치료제 시장이 내년 114억 달러(약 16조 원)에서 2030년 511억 달러(약 68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1년 출시 당시 위고비는 의료계를 중심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효능이 좋았기 때문이다. 임상시험 결과 참가자들이 1년 4개월(68주)간 체중을 평균 15%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비만 또는 과체중(BMI 27∼29.9)이면서 심혈관계 질환 등 한 가지 이상의 체중 관련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었다. 이들은 섭취 칼로리를 줄이는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했다.
위고비는 바늘이 달린 마커펜처럼 생겨 복부, 허벅지, 팔 등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 방식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맞으면 되고 1회 투약분이 담긴 주사기 4개를 한 세트로 판다. 위고비 한 세트는 미국에서 1350달러(약 180만 원)의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사실상 주사기 1개 값이 45만 원인 셈이다. 그럼에도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13일 현재 미 식품의약국(FDA)이 운영하는 의약품 실시간 상황판에도 “수요 증가로 물량이 부족한 상황. 언제 해소될지는 알 수 없다”고 안내되어 있다.
미국에서 수요가 폭증하자 제조사인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유럽 출시를 늦췄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같은 이유로 당초 올 하반기(6∼12월)로 예상됐던 한국 출시도 지연됐다는 말이 나온다. 노보노디스크는 “생산 라인을 확충했지만 내년에도 품귀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물량 부족 현상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로 올 5∼7월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영국에서 연이어 위고비를 내놨다.
● 英, 고도비만 환자에게만 건보 적용
사회보험 체계가 발달한 유럽 출시를 앞두고 화제는 건강보험 적용 여부였다. 미국에서 위고비는 공공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메디케어(공공 건강보험) 현대화법’에 따라 체중 감량을 위한 약은 공공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간 건강보험이 없는 저소득층은 비싼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투약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미국 뉴욕시의 처방 데이터를 분석해 “지난해 맨해튼 부촌인 ‘어퍼이스트사이드’ 주민 2.3%가 위고비 등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았다”고 보도했다. 어퍼이스트사이드는 부유한 백인 밀집 거주 지역으로 비만율이 뉴욕 내 최하위에 속한다. 반면 비만율이 높은 브루클린에서는 처방 비율이 1.2%에 그쳤다. 뉴욕 부촌의 생활상을 주로 집필하는 작가 질 카그먼은 “요즘 부자들은 위고비를 ‘살 빠지는 비타민’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루클린 인근 뉴욕대 랭곤종합병원의 비만치료센터에서 일하는 프리야 자이싱하니 교수는 “의학적으로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는 치료제를 눈앞에 두고도 품귀 현상과 높은 가격에 쓰지를 못한다”며 “이 약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이기를 희망한다”고 NYT에 말했다. 각각 5, 7월 출시한 노르웨이와 독일도 국민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위고비의 고향인 덴마크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건보 적용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독일 보건 당국은 “국내법에 따라 체중 조절 의약품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또 체중 조절은 개인의 책임과 생활방식의 문제에 해당한다”고 미국 CNBC에 밝혔다.
다만 유럽에서 출시가는 미국에 비해 최대 8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월 비용은 약 용량에 따라 영국 73∼176파운드(약 12만∼29만 원), 독일 170∼300유로(약 24만∼43만 원)로 출시가가 정해졌다. 제약사 측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미국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적은 유럽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 건강보험을 적용한 국가는 영국이 처음이다. 영국은 4일 세계 국가 중 5번째로 위고비를 출시했다. 다만 보험 적용 대상을 제한했다. 이 약 처방에 국민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받는 환자는 3만5000여 명뿐이다. 영국 내 출시가 이뤄진 잉글랜드 지역 전체 인구(5649만 명)의 약 0.09%에 불과하다. 보건 당국은 엄격한 처방 조건을 공개하며 “국민 세금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도록 기준을 짰다”고 밝혔다.
● 식이요법·운동과 병행해야 효과
위고비는 환자가 음식을 덜 먹게 돕는다. 환자가 빨리, 오래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사량을 줄이게 하는 원리다. 즉 식사량을 유지했을 때는 효과를 보기 어려운 방식이다. 이 약은 식욕 조절에 관여하는 체내 호르몬인 GLP-1의 역할을 해 환자의 포만감을 늘리고 배고픔과 고지방 음식에 대한 선호를 낮춘다. 또 위와 장 운동을 저하시켜 음식이 천천히 소화되게 해 포만감이 지속되는 시간을 늘린다. 이에 설사, 변비, 구토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위고비의 효능을 검증한 임상시험은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며 “일반 체중인 사람이 미용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효과보다 부작용이 오히려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양현 고대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위고비를 둘러싼 전 세계적 흥분에 대해 “위고비는 건강기능식품이 아니고 의료진과 상담을 통해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인데 ‘다이어트 약’이라며 자극적으로 비추어지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비만치료는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 체중을 감량하고 이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미국이 유일하게 14세 이상 청소년에 대해 위고비 사용을 승인했다. 박경희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소아비만 환자들은 성인에 비해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동기 부여가 잘 되지 않는 특징이 있는데 위고비는 편리하고 효과가 좋아 비만치료로 힘들어하는 소아비만 환자에게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소아비만 환자는 성인에 비해 가족, 학업 등 환경적 스트레스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생활습관 개선이 전제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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