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 이젠 고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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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전기차·수입차만 과도하게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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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가액과 환경 함께 고려해 재설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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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이슈, 국민 참여 토론은 피했으면
출고가격이 1억2000만원 안팎인 준대형 전기차 테슬라 모델S의 자동차세는 13만원이다. 반면, 출고가격이 테슬라 모델S의 절반 수준인 제네시스 G80 3.5에는 매년 90만2200원의 세금이 붙는다. 메르세데스-벤츠 E300(출고가 7660만원)은 쏘나타 2.0(출고가 2808만~3650만원)보다 두 배 이상 비싼데 자동차세는 52만원 정도로 비슷하다. 값비싼 전기차나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세금이 훨씬 적다. 우리나라가 배기량(cc)에 따라 자동차세를 매겨서 생긴 현상이다.
나라마다 자동차세 방식은 다르다. 자국 차의 경쟁력을 염두에 두면서도 환경을 챙기는 나라가 많다. 대형차가 많은 미국은 차량 가격을 기준으로 매긴다.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 차 세금이 일본·유럽 차보다 많아져 시장에서 불리해지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환경을 중시하는 독일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경차 대국’ 일본은 배기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되 경차에 인센티브를 많이 준다.
1968년 도입한 우리 자동차세도 과거엔 잘 작동했다. 배기량이 많으면 대체로 비싼 차였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배기량이 적어도 성능이 좋고 비싼 차가 늘었다. 현재 자동차세는 배기량에 따라 영업용은 cc당 18~24원, 비영업용은 80~200원을 부과하지만 배기량이 없는 전기차·수소차는 ‘그 밖의 승용차’로 분류해 정액 13만원(자동차세 10만원+지방교육세 30%)만 매긴다. 차는 비싼데 세금은 적게 내는 역진성은 ‘불편한 현실’이다. 세금 부담 능력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조세의 기본원리인 능력원칙과도 어긋난다.
차량의 배기량 기준은 자동차세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기초생활 급여나 장애인 복지 등의 수급자격을 정할 때도 기준이 된다. 자동차 배기량이 1600cc를 넘으면 수급 대상 선정 과정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정부가 50여년 만에 자동차세 개편에 나섰다. 불합리한 모순투성이 자동차세를 이젠 고칠 때가 됐다. 대통령실은 자동차세 등 배기량 중심의 자동차 재산기준 개선을 지난달 국민 참여 토론에 부쳤다. 86%가 자동차세 개선에 찬성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13일 자동차세는 차량가액 등 다른 기준으로 대체하거나 추가·보완하고, 기초생활급여 등 수급자격 산정 때 적용되는 배기량 상한은 폐지하거나 완화하라고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에 권고했다.
자동차세는 차량의 재산가치와 환경 오염, 도로 사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차량가액만을 기준으로 매기면 전기차 세금만 크게 올라 친환경차 확대 정책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는 차 가격과 중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재산세와 환경세 성격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자동차세 개편의 여론 수렴 창구로 국민 참여 토론이 적절했는지 대통령실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민 참여 토론에서 반대 의견을 개진한 이들의 상당수는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꺼리는 전기차 보유자일 가능성이 크다. 도로 파손 등을 이유로 전기차 중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안에 대해 “무게로 인한 도로 파손이 문제라면 (앞으로) 국민 몸무게로 세금 걷으려는 거냐”는 과도한 주장까지 게시판에 올라있다. 정부는 이제까지 도서정가제, TV 수신료, 집회·시위 제재 강화 등을 주제로 국민 참여 토론을 했다. 국민 의견을 널리 듣는 건 좋다. 하지만 복잡한 세금 이슈는 국민 참여 토론보다 전문가 공청회 등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여론을 수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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