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클린스만 감독, 분발하세요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클린스만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들어오라고 해서 왔다. 친선경기를 마치고 귀국하는데도 이렇게 많은 분이 환영해 주시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
「 ‘능력’ 이전에 ‘근태’로 화 돋운 감독
아시안컵 실패 않도록 압박해야
」
이 독일 신사는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것인가. 많은 축구팬이 그에게 깊이 실망하고 화가 나 있다. 세계적인 공격수 출신인 클린스만은 지난 3월 한국 대표팀을 맡은 뒤 안방 네 경기에서 2무2패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그의 ‘근태(근무태도)’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67일만 국내에 머물러 ‘재택 근무’라는 입길에 올랐다. 주로 미국 자택에 머무르며 유럽축구 관련 인터뷰를 하거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추첨식에 참석하는 등 ‘한국 대표팀 감독’과는 무관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면서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도 생략하고, 기자단과의 인터뷰도 마지못해 화상으로 진행했다.
9월 유럽 원정에서도 사건사고는 이어졌다. 한국(FIFA 랭킹 28위)보다 순위가 낮은 웨일스(35위)를 상대로 무기력한 경기를 했다. 전반 25분 ‘쿨링 브레이크’(물 마시는 시간)에도 클린스만은 멀뚱멀뚱 선수들만 쳐다보며 아무런 작전 지시를 하지 않았다. 졸전 끝에 0-0으로 경기가 끝난 뒤 클린스만은 상대 선수 에런 램지의 유니폼을 받아 갔다. 아들이 부탁했다고 한다.
사우디전을 앞둔 9월 10일 런던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독일)과 첼시(잉글랜드)의 레전드 매치 명단에 클린스만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부임 후 5경기 연속 승리가 없는 감독이 A매치 직전에 자선경기에 출전한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듯 클린스만은 경기에 나가지 않았다.
부상 중인 이강인(파리생제르맹)만 빼고 해외파가 총출동한 한국은 사우디(FIFA 54위)에 1-0으로 이겼고, 클린스만은 6경기 만에 첫 승을 따냈다. 그러나 축구팬과 전문가들은 “도대체 클린스만이 보여주려는 축구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은 4년 동안 줄기차게 ‘빌드업 축구’를 지향했다. 골키퍼-수비수-미드필더로 이어지는 패스 플레이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이 전술에 대해 “답답하다” “위험하다”는 불만과 비평이 쏟아졌지만 벤투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축구를 못한다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 벤투를 ‘우리 감독님’이라고 불렀던 선수들은 그가 떠난다는 소식에 “우리가 만류하면 안 될까요. 이제야 어떻게 하면 경기를 이길 수 있는지 알게 됐는데…” 라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클린스만은 주말에 K리그 경기를 본 뒤 또다시 밖으로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 1월 아시안컵 우승에 모든 것을 걸었고, 아시안컵이 ‘벤치마크’(측량점)가 될 거라고 강조했다. ‘그 동안에는 나를 흔들지 말라’는 뜻의 표현도 했다.
그런데, 손흥민·김민재·이강인·황희찬…. 이 막강 멤버로도 아시안컵 우승을 못한다면? 여론에 떠밀려 클린스만을 경질한다고 해도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표팀은 새 감독을 뽑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는 대한축구협회의 크나큰 실패이자 자업자득이 될 것이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축구협회는 클린스만에게 분발을 촉구하고, 언론은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능력’ 이전에 ‘근태’로 인해 축구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선수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지도자에게는 월급이 아깝지 않은가.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