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와 기본권 사이… 국회 첫 문턱 넘은 '머그샷법'
머그샷 공개 법안 국회 소위 통과
알권리 충족 vs 범죄예방 효과 없어
전문가들 "다양한 검토 거쳐야"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흉악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머그샷'(mugshot)을 의무 공개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간 국내에서는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 머그샷을 공개할 수 있어 신상정보가 공개되더라도 실물과 다른 신분증 사진만 대부분 제공돼왔다.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지지하는 분위기가 많지만 피의자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고, 범죄예방에 큰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머그샷'은 범인 식별을 위해 수사기관이 찍은 범죄자 인상착의 기록사진을 뜻한다. 정확한 명칭은 '폴리스 포토그래프'로 17세기부터 사용된 얼굴의 은어 '머그'(mug)에서 유래했다. 미국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나 체포될 경우 머그샷을 촬영해 공개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그샷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선 흉악범죄자의 얼굴은 별다른 절차 없이 언론에 공개됐다. 2000년대 들어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경찰은 피의자들에게 마스크와 모자 등을 씌워 언론 노출을 막아왔다. 신상공개 논의가 다시 시작된 건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때다. 당시 강호순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에 국회는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을 개정해 범죄자 신상공개에 대한 법적 틀을 만들었다.
현행 피의자 신상공개는 특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에 근거를 둔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 △국민 알권리 보장, 피의자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이익을 위해 필요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의 조건을 충족했을 때 얼굴과 성명 및 나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피의자를 촬영한 사진(머그샷)은 본인 동의를 얻어야 공개할 수 있다. 거부할 경우 주민등록증 사진을 공개하는데 실물과 다르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또 사진이 공개됐더라도 검찰로 송치될 때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긴 머리를 늘어뜨리면 얼굴 노출을 피할 수 있었다.
신상공개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여론을 반영해 국회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2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흉악범죄자의 신상공개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률 제정안을 의결했다. 정점식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특정중대범죄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병합됐다. 공개대상 범죄 유형은 기존 특정강력 범죄와 성폭력 범죄를 비롯해 내란·외환, 범죄단체조직, 폭발물, 현주건조물방화, 일부 상해·폭행, 마약 등 특정 중대범죄로 확대됐다. 신상공개 결정이 나오면 30일 이내 수사기관이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고, 필요한 경우 얼굴을 강제로 촬영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처럼 머그샷이 공개될 수 있는 셈이다.
머그샷 공개는 국민 알권리를 충족한다는 긍정적 면이 있다. 잠재적 범죄자에게 경각심을 줘 범죄예방을 할 수 있고, 피의자가 저지른 다른 범죄가 있을 경우 공개된 얼굴을 토대로 수사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인 순기능으로 꼽힌다. 흉악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단죄 효과도 있다.
국민 대다수도 머그샷 도입을 원한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6월26일부터 7월9일까지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7474명 중 7196명(96.3%)는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95.5%는 머그샷 등 최근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 여론과 달리 부정적 영향도 외면할 수 없다. 피의자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을 공개한다면 무죄추정 원칙에 반할 수 있고, 언론보도로 법원이 피의자에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만일 진범이 따로 있다면 그 피해는 사실상 회복할 수 없다. 국민적 분노는 누그러뜨릴 수 있어도, 범죄예방에 큰 효과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머그샷 도입에 앞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양홍석 변호사는 "흉악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되고 역사에 남도록 하는 것이 또 다른 유사 범죄를 막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가 많지 않다"며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검토를 거쳐 정책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머그샷 등 신상공개는) 재범을 방지하고, (잠재적 범죄자의) 범행을 억제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범죄예방 효과도 있다. 대중의 사회적 공분을 가라앉혀 줄 수도 있다"면서도 "살인 등 강력범죄의 경우 중형을 받게 되는데 재범의 위험은 낮다. 오히려 재범률이 높을 수 있는 성범죄나 상습사기, 가정폭력, 스토킹 등이 우선 공개대상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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