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패권국 노리며 국제질서 판 흔드는 일본

김수미 2023. 9. 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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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불황으로 中에 밀리자
美 끌어들여 中 봉쇄전략 세워
‘한반도 긴장’ 국익 도움 판단도
美·中 패권전쟁 사이 낀 한국은
안보·경제 선택 압박에 시달려
日 견제 속 구체 대응방안 제시

일본이 온다/김현철/쌤앤파커스/2만2000원

“당시 일본은 2017년 1월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집요하게 설득해 그해 11월에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양국 공동 외교 전략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아시아에서만 서로 대립하던 중·일 관계가 미·중 패권경쟁으로 옮아가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러니 바로 그 직후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작심하고 일본을 비난했다.”

일본 경제 전문가로 문재인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은 2017년 12월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례적으로 일본 이야기부터 꺼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린 미·중 패권경쟁의 배후에는 미국의 힘을 빌려 중국의 굴기를 막으려는 일본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7년 11월6일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 회담에서 일본이 제안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합의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 원장은 신간 ‘일본이 온다’에서 “일본이 새로운 대외 팽창을 시도하며 국제 질서의 판을 흔들고 있다”고 일갈했다. 책에 따르면 일본은 역사상 세 번의 대대적인 대외 팽창을 감행했다. 첫 번째는 임진왜란, 두 번째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을 시작으로 한 대륙 침략과 태평양전쟁, 세 번째는 인도양과 태평양의 해양세력이 협력해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대륙세력을 봉쇄해야 한다며 2012년부터 시도한 ‘인도태평양 전략’이었다.

일본은 201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패권국이었으나 이후 중국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중국과 갈등이 고조됐다. 그러나 앞서 두 번의 전쟁 때와 달리 20년간의 경기침체로 경제력과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봉쇄하고 대만과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켜 아시아 패권을 다시 차지하려고 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일본은 왜 한반도의 긴장을 원할까. 저자는 한반도를 분단 상태로 고착시켜 놓아야 일본의 국익이 극대화된다는 일본 보수 우익의 한반도관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후 미국은 일본을 비군사화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자위대 전신인 경찰예비대 설치를 허용했다. 또 일본은 당시 유엔군의 보급기지가 돼 태평양전쟁으로 초토화됐던 경제를 기사회생시킬 수 있었다.

미국 입장에선 일본이 제안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을 견제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중산층의 몰락과 실업 문제에 대한 불만을 중국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미·중 패권 전쟁은 전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한국은 최전방의 최대 피해국이 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안보냐, 경제냐’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양자택일의 문제가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단언한다.

이미 유럽연합(EU)은 공개적으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거부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이 결정되자마자 독일 기업인들을 대거 이끌고 중국으로 달려갔다.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방에 있으며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대만 역시 중국의 군사위협 속에서도 공격적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해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제치고 수입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미국 기업들조차 워싱턴의 중국 봉쇄를 교묘하게 피하거나 대놓고 반기를 들어, 패권경쟁 와중에 미국과 중국 교역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벌어졌다.
김현철/쌤앤파커스/2만2000원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방증이다. 국민을 이기는 국가는 없다. 결국 2023년 5월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위험 제거)으로 바꾸는 공동선언이 나왔다. 디커플링이 중국과 전면적인 단절을 의미한다면, 디리스킹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교역국을) 다변화하고,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서는 경제 전반이 아닌 특정 물자나 행동에 대해서만 공동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한반도의 긴장을 이용하려는 일본의 끊임없는 대외 팽창 시도를 견제하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들도 제시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치를 견제하되, 혐오하지 말고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닐까.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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