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기도하는 책들
권력자가 무너뜨리는 모순 그려
2024년 문체부 ‘지역서점 예산’ 실종
‘생존 위기’ 책방지기들 깊은 한숨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은 책방지기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부터 그 비슷한 꿈이 있었다. 경주 종가의 장손이며 우직한 농부인 시아버지가 그걸 알아챘다. 시아버지는 땅을 아주 소중히 생각하는 분이었는데, 막내 며느릿감이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 결혼을 서두를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내게 내건 공약이 있었다.
책방지기의 꿈을 대신 실현해 주는 것이 어쩌면 동네의 작은 서점일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근 연남동에도 서점과 카페의 이점(利點)을 살린 초콜릿 북카페가 있다. 소설을 쓰는 주부 작가가 책에 대한 애정으로 만든 북카페다. 이 책방은 다양한 연령층이 공유할 수 있게 소설책과 동화책을 함께 비치하고 있다. 방과 후나 방학 때는 초등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음료를 마시며 동화책을 보곤 한다. 성인 독서토론 모임도 진행하고 있어서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내가 강의하는 대학이 있는 천안역 근처에도 대학원생들이 운영하는 ‘악어새’라는 작은 책방이 있다. 책방의 말간 유리에 새겨진 하얀 글씨의 시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 아래서 두 손으로/귀를 가리면/몸이 글자가 되는 것 같다고/말한 적 있지” (조민주의 ‘도플갱어’ 부분). 이 책방은 이 시를 쓴 대학원생 민주양과 성욱현 동화작가가 함께 운영한다. 행인들이 가끔 서서 책방 유리에 내걸린 긴 시를 천천히 감상한다. 요즘 이 책방에선 지역서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시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 중이다. 은행이 마주하고 있는 도로변에 시가 걸리니 갑자기 문화거리가 된 듯이 여유로워 보인다.
지역의 작은 책방에서는 책만 판매해서는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지역서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이런 전시 행사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런 지원으로 ‘작가와의 만남’이나, ‘심야 책방’, ‘독서 동아리 활동’, ‘인문학 강연’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같은 행사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도 힘이 되기도 하며 지역 주민들이 책방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런데 2024년도 문체부 예산안에서 ‘지역서점활성화지원사업’뿐 아니라 ‘국민독서문화증진지원사업’도 사라졌다. 그나마 지역서점지원사업으로 지역 주민들의 문화공간이 되던 작은 서점들은 이제 어떻게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할까. 지역 책방지기들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영화 ‘북샵’의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는데, 그 마을의 권력자인 가맛 부인이 서점 자리에 문화센터를 세우겠다며 온갖 법을 동원해 방해를 일삼는다. 결국 가맛 부인은 주인공 플로렌스를 강제 퇴출시키고 북샵은 문을 닫는다. 한 지역의 정서적 공간을 그곳의 권력자가 무너뜨리는 모순은 현실에서도 있으므로 문득 김수영의 시가 떠오른다. “덮어놓은 책은 기도와 같은 것/이 책에는/신 밖에는 아무도 손을 대어서는 아니 된다”(김수영의 ‘서책’ 중에서)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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