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마술같이 신기한 작은 배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백화점 앞을 지나가는데 웬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객석이 관객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고객 사은행사로 마술쇼가 곧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쇼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마술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이 무사히 절에 도착할 때까지 디제이도 기사도 누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그 마술처럼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밤을 새삼 떠올리며 나는 쇼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만치 무대 아래쪽에서 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은 행사 진행요원들이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중 한 청년이 자꾸 내 쪽을 흘깃거렸다. 아무래도 빈자리 놔두고 서 있는 것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잠깐 앉을까, 아니면 그냥 갈까 망설이는데 갑자기 그가 나를 향해 큰 보폭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 조금 전 내게 자리를 권했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쇼가 이제 시작될 건데 빵 하는 큰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질 거거든요. 혹시 놀라실까봐,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고맙다며 활짝 웃는 여자가 임산부였음을 나는 그제야 알아보았다. 대체 청년은 행사 준비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와중에 언제 객석의 임산부를 눈여겨보았을까. 임산부를 위한 작은 배려. 진행요원이 해야 할 일 중에 그런 것도 있었을까.
쇼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마술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비슷한 장면을 오래전에도 본 기억이 났다. 결혼 전 혼자 살던 시기였다. 겨울밤 늦은 시간에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당시 힘든 일을 겪고 있던 그는 절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택시를 탔다. 초로의 기사가 사람 좋게 웃으며 이 밤중에 젊은 처자들이 조계사에는 왜 가느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친구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안았다.
기사가 왁자지껄한 정치판 뒷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던 라디오의 볼륨을 줄인 것은 그때였다. 이리저리 돌아가다가 마침내 고정된 채널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베토벤이었다. 묵직하고 장중한 첼로 소리가 한밤의 택시 안을 서서히 채웠다.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는 모르나 디제이의 목소리 없이 음악만 계속 나왔다. 울고 있는 사람이 무사히 절에 도착할 때까지 디제이도 기사도 누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그 마술처럼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밤을 새삼 떠올리며 나는 쇼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김미월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