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마술같이 신기한 작은 배려

2023. 9. 1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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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앞을 지나가는데 웬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객석이 관객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고객 사은행사로 마술쇼가 곧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쇼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마술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이 무사히 절에 도착할 때까지 디제이도 기사도 누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그 마술처럼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밤을 새삼 떠올리며 나는 쇼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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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앞을 지나가는데 웬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객석이 관객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고객 사은행사로 마술쇼가 곧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고 약속 시간까지 여유도 있던 터라 나는 쇼의 시작 부분만이라도 살짝 보고 갈까 싶었다. 내 속을 읽었는지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나를 보며 비어 있던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아, 괜찮아요. 금방 일어나야 해서요. 나는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만치 무대 아래쪽에서 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은 행사 진행요원들이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중 한 청년이 자꾸 내 쪽을 흘깃거렸다. 아무래도 빈자리 놔두고 서 있는 것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잠깐 앉을까, 아니면 그냥 갈까 망설이는데 갑자기 그가 나를 향해 큰 보폭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 조금 전 내게 자리를 권했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쇼가 이제 시작될 건데 빵 하는 큰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질 거거든요. 혹시 놀라실까봐,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고맙다며 활짝 웃는 여자가 임산부였음을 나는 그제야 알아보았다. 대체 청년은 행사 준비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와중에 언제 객석의 임산부를 눈여겨보았을까. 임산부를 위한 작은 배려. 진행요원이 해야 할 일 중에 그런 것도 있었을까.

쇼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마술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비슷한 장면을 오래전에도 본 기억이 났다. 결혼 전 혼자 살던 시기였다. 겨울밤 늦은 시간에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당시 힘든 일을 겪고 있던 그는 절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택시를 탔다. 초로의 기사가 사람 좋게 웃으며 이 밤중에 젊은 처자들이 조계사에는 왜 가느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친구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안았다.

기사가 왁자지껄한 정치판 뒷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던 라디오의 볼륨을 줄인 것은 그때였다. 이리저리 돌아가다가 마침내 고정된 채널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베토벤이었다. 묵직하고 장중한 첼로 소리가 한밤의 택시 안을 서서히 채웠다.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는 모르나 디제이의 목소리 없이 음악만 계속 나왔다. 울고 있는 사람이 무사히 절에 도착할 때까지 디제이도 기사도 누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그 마술처럼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밤을 새삼 떠올리며 나는 쇼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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