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보다 총…참사 앞에서도 대립 멈추지 않는 ‘두 개의 리비아’
대홍수 사망자 최대 2만명 전망
카다피 축출 후 갈라진 동·서부
피해 대응 합동 본부 구성 합의
책임 소재 놓고 시작부터 ‘삐걱’
출입 통제·늑장 경보 의혹 겹쳐
리비아 북동부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14일(현지시간) 1만명을 넘어섰다. 아직 1만명 이상이 행방불명인 가운데 실종자 수색과 피해 복구에 힘써야 할 리비아 당국은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서부와 동부로 나뉘어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리비아통합정부(GNU)와 리비아국민군(LNA)은 대홍수 참사 책임 소재를 놓고도 신경전을 펼치는 모양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리비아 적신월사는 이날 열대성 폭풍으로 대홍수가 발생한 리비아 북동부 항구 도시 데르나 등에서 집계된 사망자 수가 1만130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실종자도 1만100명 정도로 파악됐다. 실종자 대부분이 지중해로 떠내려갔을 가능성이 큰 만큼 최종 사망자 수는 최대 2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리비아를 양분하는 GNU와 LNA는 여전히 단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GNU와 LNA는 전날 데르나 대홍수 피해 대응을 위한 합동 작전본부를 꾸리기로 합의했다. 리비아 동부 내각의 잇삼 아부 제리바 내무장관이 이 같은 계획을 제시했고 GNU가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측은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모하메드 멘피 리비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의장은 이날 “데르나 댐 붕괴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내전을 벌여온 서부와 동부가 2020년 휴전에 합의하면서 안정적인 정권 수립을 목표로 만든 조직이다.
멘피 의장은 LNA가 장악한 동부 세력 거점인 토브룩 출신이다. GNU를 이끄는 압둘하미드 드베이바 총리도 이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놨는데, 일각에서는 동부 출신 멘피 의장을 견제하기 위한 행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동부와 서부 행정부로 분열된 상황에서 조사 요청이 별도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데르나를 담당하는 동부 내각에서 피해 지역에 서부 출신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NYT는 “LNA가 데르나로 향하는 길목을 폐쇄하고 구조대원 출입만 허용하고 있다”며 “도시 전역에 LNA 소속 군용 차량이 줄을 서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동부와 서부의 권력 다툼이 벌어지는 가운데 진상조사가 어떻게 수행될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지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정치권 갈등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 몫으로 전가되고 있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전역에 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면 홍수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기상예보 체계 개선 작업을 도우려 리비아 당국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일부 주민들은 지난 10일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질 때 “집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당국의 전파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리비아 기상청은 이에 “조기 경보를 발령했다”고 해명했지만, 데르나 주민 모하메드 자달라는 NYT에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친구에게서 들었다”며 “밖에 나갔을 때 비는 더욱 거세졌고, 일부 이웃은 떠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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