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와 훈육 [만물상]
황선미 작가의 동화 ‘나쁜 어린이 표’는 담임에게 ‘착한 어린이 표’ 스티커를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나쁜 어린이 표’를 받는 아이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1999년 나온 이 책을 읽고 ‘스티커를 받을 때 아이들이 이렇게 느끼는구나’ 하고 놀라서 스티커를 쓰지 않는다는 교사가 많다. 하지만 요즘도 으쓱 카드, 머쓱 카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 카드를 쓰는 것은 아동 학대일까, 교육 지도일까. 전문가들도 사안별로 다르다며 확답을 못 했다.
▶교육부가 ‘길이 60㎝ 이하, 지름 1.5㎝ 이내 매끄러운 회초리로 체벌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이 2002년의 일이다. 2011년 3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우리 교실에서 체벌이 사라졌다. 불과 12년 전 일인데 이번에는 교사들이 아동 학대로 신고당하는 바람에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며 교권 회복 운동을 펼치는 반전이 일어났다.
▶요즘 교사들 사이에 도는 자조적인 문제가 있다. ‘수업 중 말다툼하다 영수가 철수를 때릴 때 아동 학대법에 걸리지 않고 철수를 구하는 방법은?’ 답은 ‘없다’이다. 때리지 못하도록 영수 팔을 잡으면 아동 신체 구속, 강한 어조로 말리거나 꾸짖으면 정서적 아동 학대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탁할 수 있지만 영수가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아동 학대 방임으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예시가 아니라 비슷한 일이 현실에서 생기고 있다. 2021년 초등 2학년 교실에서 한 학생이 떠들자 담임은 학생 이름표를 칠판 ‘레드카드’ 구역에 붙이고 방과 후 10여 분 교실 청소를 시켰다. 학부모는 항의하며 담임 교체를 요구하고 아동 학대로 교사를 고소했다. 2심 재판부는 “학생 이름을 공개하고 강제로 청소까지 시키는 건 아동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학부모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14일 학부모가 지속적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하는 건 교권 침해라고 했지만 벌 청소 등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판단하지 않았다. 아동 학대와 교육 지도의 선긋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있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 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교권 회복 4법’이 15일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했다. 교사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아동복지법 등에도 같은 내용을 담고 더욱 구체적인 교육부 지침을 제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래전 일상화된 체벌, 우열반 편성, 복도에 성적 순위표 게시 등을 당연한 듯 보고 겪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로선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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