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경제위기? 나는 반대일세

기자 2023. 9.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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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윤석열 정부는 시대착오적이다.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을 끌어내리고 일본 제국주의 하수인 코스프레를 한다. 해방정국의 극우파가 되어 공산전체주의를 비난하더니 6·25전쟁 직후의 일본인 양 우크라이나에 가서 재건사업 참여를 약속받는다. 군부독재 시절 안기부를 대체한 검찰 공포정치를 펴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 때 활동했던 이전 정권 청산의 선수들이 등장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언급하며 선진국 노릇을 한다. 지난 한 세기를 넘나드는 ‘의식의 흐름’에 어지러울 따름이다.

이렇게 극적이지는 않아도 더불어민주당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뜬금없고 진정성을 의심받는 단식투쟁을 하는 동안, 지지세력은 과거 민주화를 위해 단식했던 YS, DJ와 자꾸 비교한다. 민주화 투사라는 화려했던 과거로의 귀환을 꿈꾸는 일종의 퇴행이다. 양쪽 모두 전성기의 추억에 의존할 뿐, 지금 시대와 상관없는 매너리즘의 정치를 하고 있다.

도무지 꽉 막힌 사태 앞에서, 탈이념 중도실용 인사들이 내세우는 게 ‘경제’다. “정치가 이념 대립에 골몰하는 사이 경제는 곤두박질친다” 혹은 “경제 실적을 내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가 이념전쟁을 벌인다”면서 경제와 민생에 주목하자고 한다. 여기에는 GDP 상승률, 기업 설비투자율, 환율, 수출 등등 수치와 함께 30년 전 빌 클린턴의 대선 구호였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도 어김없이 나온다. 보수든, 진보든 경제성장부터 하자는 철학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 역시 정치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그때는 맞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틀리다. 우리처럼 잘사는 나라는 성장이 아닌 분배를 통해 불평등과 사회갈등을 줄이고, 삶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게 이미 정답이다. GDP라는 추상적 국가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과거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시점이다. 이것은 개인의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 어떤 경제인지, 지금의 문제를 부추기는 경제인지, 해결하는 경제인지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가 사적 영역(소위 먹고사니즘)을 벗어나 공적 영역으로 나온 것은 서구 제국주의 시대 이후이다. 전통적인 신의 섭리가 사라진 자리를 계몽주의의 토대인 자연의 원리(자연법)가 채웠고, 이것이 근대 민족국가의 정치경제(거시경제)와 결합함으로써 나온 개념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열심히 일하고 많이 생산하면 시장이 알아서 조절해준다는 믿음 아래 제국주의는 총칼 대신 무역을 평화의 무기로 사용하고, 개인은 가정이 근간이 된 노동, 소득, 소비, 재생산(출산·양육·교육)을 삶의 목표로 삼아왔다.

물론 이론 영역에서 근대 경제학은 이미 극복되었다. 케인스는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 대신 ‘보이는 국가의 손’의 효과를 증명했고, 철저히 경제적 타산만으로 행동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행동경제학 앞에 항복했다. 사회적경제, 지역경제, 순환경제, 자급경제, 탈성장, 지역화폐, 기본소득, 보편복지, 코먼스, 최근의 기후경제와 그린뉴딜까지 다양한 주체와 범위를 망라한 대안도 풍성해졌다. 문제는 현실이 거의 따라가지 못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정치’를 보완할 ‘경제’를 이야기할 때조차 무조건 성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끝없는 생산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젖소 한 마리당 일 년에 남는 이익이 1000원… 우유 팔아 남는 건 눈물뿐’이라는 한 일간지의 르포기사였다. 생산량은 늘고 아이들은 줄고 다른 음료와의 경쟁은 심해지니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생산량이 늘어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젖소 수가 늘었겠지만 착취의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다. 젖통이 큰 암소 종자를 개량하고 쉼 없이 임신시켜 젖이 나오게 새끼는 바로 떼어내고 암컷만 남긴 채 수컷은 육질이 가장 좋은 두 살에 도살한다. 이 과정에 온실가스인 메탄, 분비물로 인한 폐수, 농부의 눈물이 섞여 있다. 우유를 많이 마시면 해결될까.

윤석열 정부는 경제정책이 없다고 한다. 기업활동을 방해만 하지 않으면 잘 돌아갈 테니 공정거래 여부를 수사하는 게 유일한 경제정책이다. 이 역시 자본주의 초기 ‘보이지 않는 손’ 시대로의 퇴행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을 폈다가 처참한 결과를 맞았다. 소득도, 성장도 줄어드니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가 경제라면 소득과 성장이라는 뒤떨어진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 민생의 길을 함께 찾아나감으로써 양 진영의 시대착오를 극복하는 게 진짜 진보의 길이 아닐까.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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