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만 바꿔도 '빙글빙글' 어지럽고 구역질까지…
“아침에 에 일어날 때 갑자기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고 구역ㆍ구토감이 나타나요. 앉았다가 뒤로 눕거나, 누워서 좌우로 돌아누워도 천장이나 벽이 회전하는 것처럼 어지러워요. 어지러운 증상은 1분 이내 멈추지만 머리를 움직이거나 자세를 바꾸면 다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요. 너무 어지러워 메슥거리고 심지어 토하고 식은땀까지 나요.” 이석증(耳石症) 진단을 받은 주부 양모(55ㆍ여)씨의 증상이다.
이석증(耳石症)은 전정(前庭)기관(내이에서 평형 감각을 맡고 있는 둥근 주머니)의 하나인 이석기관의 이석(耳石)이 제자리를 이탈해 또 다른 전정기관인 반고리관에 들어가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반고리관은 내림프액이라는 액체로 채워져 있는데 이곳에 이석이 들어가면 머리를 움직일 때 반고리관 안에서 이석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림프액이 출렁거리게 된다. 이같은 비정상적인 내림프액의 흐름은 평형감각을 자극해 가만히 있는데도 천장이나 주위가 빙빙 도는 듯한 심한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한자로 이석(耳石)은 귓속의 돌이라는 의미지만 실상은 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탄산칼슘 덩어리다.
이석증은 모든 어지럼증의 원인 질환의 30~40%를 차지해 어지럼증의 가장 흔한 원인 질환이다. 가만히 있을 땐 괜찮지만 머리를 특정 위치로 움직이면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이석증은 내이(속귀)의 반고리관에 위치한 이석 입자(particle)가 환자의 머리가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면서 반고리관의 내림프액 이동을 자극해 유발되는 머리 위치 변화로 발생하는 갑작스럽고 짧게 반복되는 회전성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전은주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석증은 비교적 간단한 진단법으로 즉시 진단할 수 있고 진단만 정확히 되면 적절한 물리 치료로 빠르게 치료가 가능한 만큼 어지럼증이 나타나면 가능한 한 빨리 병원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특정 움직임을 할 때 회전성 어지럼증 반복돼
이석증에서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가장 흔한 자세는 앉았다가 뒤로 누울 때, 누워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누울 때 등이다. 순간적으로 천장이나 벽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다행히 어지럼증은 오래가지 않는다. 보통 1분 이내에 멈춘다. 하지만 머리를 움직이거나 자세를 바꾸면 또다시 같은 증상이 반복된다. 심하면 메슥거리는 증세와 함께 구역, 구토, 안구의 비정상적 움직임(眼震), 식은땀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난청·이명·귀 통증 등 귀와 관련된 다른 증상은 동반하지 않는다.
이석증이라는 병명은 국내에서 병의 원인을 ‘이석이 빠져서 생긴 병’으로 설명한 데서 유래한다. 최근에는 의사들도 이석증이라는 명칭을 많이 쓰지만, 정식 의학용어는 영어 진단명을 그대로 번역한 ‘양성 돌발 체위 변환 현훈(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BPPV)’이다. 국내 의학용어집에는 ‘양성돌발두위현훈’이라는 명칭으로 수록돼 있다. ‘현훈(眩暈)’은 빙글빙글 돈다는 뜻이다.
국내 이석증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정기능장애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2018년 102만8,058명으로 처음 100만 명을 돌파한 이래 지난해 114만9,215명으로 4년 새 11.8%(12만여 명)가 늘었다.
전은주 교수는 “이석증은 주로 40대 이상 중·고령층에서 발병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이의 허혈로 이석이 불완전하게 형성되기 쉽고 이석기관의 퇴행성 변화로 유동성 석회화 물질이 쉽게 생길 수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며 “성별로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석정복술 15분 2~3회면 90% 환자 치료
이석증은 보통 가만 놔두면 수주에서 수개월 후 저절로 없어지지만, 적극적인 치료를 하면 훨씬 더 빨리 좋아질 수 있다.
진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병력’과 ‘이학적 검사(physical examination)’다. 병력은 회전성 어지럼증이 갑자기 발생한 적이 있거나 머리 움직임에 따라 증상이 더 심해졌다면 의심할 수 있다.
이학적 검사는 머리와 몸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안구에서 나타나는 안진을 관찰하는 체위 안진 검사로 확인한다. 안진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안구가 특정한 방향으로 반복해서 튀는 움직임을 말한다.
머리를 좌우로 45도 회전시킨 상태에서 뒤로 눕히면서 안진이 나타나는지 보거나, 누운 상태에서 머리를 좌우로 돌리면서 안진을 유발해 특징적인 증상과 안진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해 진단한다.
전은주 교수는 “이석증 진단 자체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석증의 경우 양쪽 귀의 세 개의 반고리관에서 각각 발생할 수 있고, 이석증 유형이 반고리관 결석증과 팽대부릉형 결석증 두 종류로 더 나뉘기에 모두 12가지 아형(亞形)의 이석증이 가능하며, 여기에 2개 이상의 반고리관에 동시에 이석증이 생기는 다발성 이석증과 기타 아형들도 여럿 있다”고 했다.
전 교수는 “이런 부분에 대한 세부 지식을 숙지하고 안진 양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해야 정확하게 병변이 온 곳을 찾아낼 수 있고 그에 따라 치료의 정확도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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