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드라마틱 엑시트
경제기획원이 재정경제원에서 기획재정부로, 내무부가 행정안전부가 된 것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결과였다. 국토통일원이 통일부, 국가안전기획부가 국가정보원으로 탈바꿈한 과정은 독재의 잔재를 허물고 민주사회를 지향하겠다는 국정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정부 조직은 시대 상황에 따라 축소·확장되거나 더러는 폐지되는 운명과 맞닥뜨린다. 그렇다고 부처의 역할과 가치가 소멸되는 건 아니다. 정부 부처 장관들이 ‘소임’을 강조하고, 전임 장관의 계승 여부를 취임사 맨 앞에 세우는 데는 이런 전통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이 맡게 될 조직이 사라지게 하는 데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는 이가 등장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내정자다. 김 내정자는 지난 14일 “여가부 기능이 더 적극적으로 대국민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부처로 통합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드라마틱하게 엑시트(극적인 퇴장) 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달라진 사회환경을 ‘드라마틱 엑시트’ 이유로 들었다.
윤 대통령은 “역사적 책무를 다했다”며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고, 여권은 “중복 업무가 많아 여가부 기능을 이관하면 된다”며 폐지수순을 밟겠다고 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1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는 여성 직장인 87%가 정부의 성범죄 피해자 보호정책에 부정적이고, 스토킹 피해자 67%가 피해 사실을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냈다. 여가부가 왜 존립해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여가부의 청소년 노동권 보호사업 예산(약 13억원)이 증발한 것 역시 여가부 업무의 이관이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여가부의 역사적 책무와 기능을 우리 사회가 여전히 기대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여가부 폐지 내용이 없었던 것 아니겠는가. 거대야당의 딴지걸기로 해석할 수 없는 일이다.
여성 정책에 대한 전문성 부재는 논외로 하더라도 대통령 공약을 여가부 폐지 근거로 삼는 것은 논리박약이다. ‘있어 보이는’ 영어표현을 썼다고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이런 생각으로 여가부를 이끌 생각이라면 김 내정자 먼저 ‘드라마틱 엑시트’ 하시라.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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