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퇴사 직원에게 '회사 비방금지' 서약서 강요
쿠팡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 풀필먼트서비스’가 퇴사하는 직원들을 상대로 개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내용의 ‘퇴사자 서약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약서에는 퇴사 후 동종업계에 1년간 취업하지 않고, 회사를 비방하지 않으며, 향후 금전문제에 대해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쿠팡 풀필먼트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닌 이 서약서를 ‘직원들 퇴직 처리를 위한 필수 서류’라며 강요하고 있다.
동종업계 취업 제한 등…기본권 침해 조항 ‘수두룩’
뉴스타파가 입수한 쿠팡 풀필먼트의 ‘퇴사자 서약서’는 A4 2장 분량에 총 6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회사 정보의 이용, 공개, 유포, 누설 등 금지 △정보 보안 관련 △동종업계 취업 등 기타사항 △제재에 대한 동의 △비방 금지 △이의 제기 금지 조항이다. 쿠팡 풀필먼트는 이 서약서를 직원 퇴사 시 사직서와 함께 반드시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문제는 퇴사자 서약서의 내용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쿠팡 서약서를 검토한 노동법률 전문가들은 “서약서 내용 대부분이 기본권 침해 소지가 높다”는 의견을 냈다.
서약서 내용 중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건 ‘동종업계 취업 제한’ 조항이다. 해당 조항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퇴사 후 1년 간 회사 정보가 이용될 수 있는 동종 또는 유사 업종(반드시 동종업종에 국한되지 않고 회사의 영업 형태 일부(전자상거래, 배송 등 관련))의 경쟁회사(잠재적 경쟁회사를 포함함), 연구소 등에 취업 기타 협력관계를 맺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 쿠팡 풀필먼트 퇴사자 서약서 3조 ‘동종업계 취업 등 기타사항’ 항목 중
이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퇴사한 노동자가 다른 물류센터 또는 택배사로 이직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노동 사건 전문가인 조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기술 관련 업무를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경쟁사 취업금지 조항이 담긴 퇴사 서약서를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물류센터 직원들이 핵심 기술 관련 업무를 했던 것도 아니고, 물류센터의 동종업계라면 택배사에도 취업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건 직업 선택의 자유를 너무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이런 서약서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시선)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대부분이 연구직이나 정규직도 아니고 잠깐씩 근무하는 현장 계약직이다. 이직이 빈번한 현장직 노동자들에게 다른 현장직으로 취업하지 말라는 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완전히 제한하는 것이다. 이런 서약이 실제 법적으로 용인될 것이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원은 쿠팡과 같이 광범위하게 노동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약정은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한 바 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경업(경쟁사 취업) 금지약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하며, 이와 같은 경업금지 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0. 3.11. 선고 (2009다82244)
비방금지, 이의제기 금지 등 기본권 포기 요구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는 조항도 있다. 서약서 4조, ‘제제에 대한 동의’ 조항이다. 여기에는 ‘서약서 사항의 위반 여부가 의심되는 경우 사전 경고 없이 회사가 개인이 업무 중 사용했던 PC, 노트북 등 업무용 단말기, 메일 및 메신저 등에 대해 열람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동의한다’고 돼 있다. 즉, 퇴사한 직원이 서약서 내용을 위반했을 경우, 회사가 해당 직원이 재직 시절 사용했던 메신저나 메일을 동의 없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김승현 노무사는 “아무리 회사 컴퓨터라도 개인 메신저 안에 있는 내용은 회사의 자산이 아니다. 개인 동의 없이 회사가 마음대로 열어보면 사생활 침해이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회사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쿠팡이 이런 위법성을 인지하고, 미리 개인 동의를 구하는 내용을 서약서에 포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강연 노무사(류호정 의원실 선임비서관)는 “해당 조항에는 회사가 수집한 정보의 오·남용에 대한 규제 내용이 따로 없기 때문에, 회사가 노동자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 노동자의 사생활 및 인격권이 과도하게 침해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퇴사자 서약서 5조 ‘비방 금지’ 조항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해당 조항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본인은 퇴사 후에라도 회사 및 계열사, 그 전·현직 임직원, 대리인, 기타 회사와 이해 관계가 있는 당사자(이하 ‘회사 측 당사자’)를 모욕하거나 비방하는 발언을 하거나 또는 회사 측 당사자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회사 측 당사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발언을 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그러한 발언을 하도록 허용, 승인 또는 유도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
- 쿠팡 풀필먼트서비스 퇴사자 서약서 5조 ‘비방금지’ 내용
노동자가 회사를 근거 없이 비방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서약서에 언급된 비방의 범위가 추상적이고 모호해 정당한 노동자의 비판 발언까지 회사가 문제 삼을 소지가 있다.
조영신 변호사는 “회사가 비방 금지 서약을 받지 않더라도 퇴사한 직원이 회사를 비방해서 명예를 훼손했다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비방금지 서약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쿠팡 노동환경을 비판하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많다 보니 이를 차단하기 위해 넣은 조항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승현 노무사도 “서약서에 아무리 비방 금지 조항이 있어도, 사회적으로 공공의 이익이 되는 부분을 비방하거나 비판했다면 당연히 헌법상 언론의 자유로 면책이 된다. 정당한 비판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런 서약서를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 ‘잘못 말하면 손해배상 소송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 회사가 노리는 부분도 실제 법적 효과보다는 노동자 입막음 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노동자 입막음 용 각서”... 노동 전문가들 하나같이 비판
서약서 6번, ‘이의 제기 금지’ 조항 역시 문제다. 일종의 부제소 합의 조항인데, 여기에는 서약서 작성 당시 노동자가 예상할 수 없는 미래의 권리까지도 사전에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회사에서의 근무 및 퇴직과 관련해 본인이 회사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리, 혜택 및 청구할 수 있는 금액 전부가 지급되어 최종적으로 청산되었음을 확인하였고 이를 인정하며, 회사 및 계열사, 그 임직원, 대리인, 기타 회사와 이해 관계가 있는 당사자에 대하여 행정상 또는 민형사상 청구, 제소 기타 어떠한 형태의 이의제기도 하지 않겠습니다.
- 쿠팡 풀필먼트 퇴사자 서약서 6조 ‘이의 제기 금지’ 조항
전문가들은 이렇게 포괄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부제소 합의’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조영신 변호사는 “서약서 작성 당시 노동자가 예상할 수 없는 부분까지 미리 이의제기를 금지하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해당 조항은 법적 효력이 없을 것이다. 회사가 해당 조항으로 노리는 건 법적 효력보다는 심리적 위축 효과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노동자들, “서약서 제출해야 퇴사 처리” 서명 강요 받아
쿠팡 풀필먼트는 퇴사자 서약서가 노동자들의 선택사항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퇴직 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반강제로 서약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인천 지역 쿠팡 물류센터에서 퇴사한 전 계약직 직원 A씨는 “서약서 내용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서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본사 지침이라며 서약서를 반드시 제출해야지만 퇴직 처리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퇴직 처리가 안 되면 당장 퇴직금을 정산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약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쿠팡 물류센터 사무직으로 일했던 B 씨도 “서약서 제출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퇴사 처리를 안 해줬다. 때문에 퇴사 통보 후 회사에 안 나간 날이 모두 무단결근으로 처리됐다. 무단결근이 되면 이직이나 퇴직금 정산에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결국 서약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서약 강요로 볼 소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서약서 작성을 요구하더라도 반드시 서명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용자(회사)가 직원들에게 서약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거부하기 어렵다. 노동자 입장에선 이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 빨리 퇴직금 정산 받고 나가고 싶은 노동자들은 서약서를 거부하면서까지 회사에 발목 잡히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회사가 이런 사정을 이용해 서약서 작성을 사실상 강요했다고 볼 수 있다.
- 조영신 변호사
김승현 노무사는 “민법상 회사에 퇴사를 통보한 후 한 달이 지나면 퇴사 효력이 발생한다. 당장 퇴직금을 정산받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겠지만, 한 달 전에만 퇴사 통보를 했다면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퇴직 처리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쿠팡 풀필먼트의 기본권 침해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쿠팡은 물류센터 작업장 안에 개인 휴대폰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근무 중 휴대폰 사용으로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작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쿠팡의 이 같은 방침이 헌법이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쿠팡에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쿠팡은 인권위 의견을 무시하고 여전히 작업장 내 휴대폰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 같은 쿠팡의 조치가 오로지 열악한 물류센터 노동환경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고, 쿠팡에 대한 여러 비판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한다. 쿠팡 전직 사무직 직원 B 씨는 “쿠팡 내부 직원들이 언론 제보도 많이 하고, 관계기관에 신고도 많이 하니까 이를 줄이기 위한 회사 차원의 시도로 보인다. 쿠팡의 관심은 노동환경 개선보다는 오로지 비판 목소리 차단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쿠팡 풀필먼트 측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퇴사 서약서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해당 서약서의 내용이 노동자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등을 물었다. 쿠팡 측은 질의서에는 답하지 않았고, 대신 문자메시지로 “일반적인 양식으로 작성을 안내한 경우는 있었지만, 퇴사자가 해당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뉴스타파 홍여진 sara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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