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러시아인, 엄마는 우크라인…어느편에 서야 할까요 [Books]
친가는 침공 불구 푸틴 옹호
외가에선 전쟁 공포에 벌벌
기막힌 가족사 파고든 저자
1930년대 독립운동 중 실종
외증조 큰할아버지 삶 추적
친가 쪽 어르신은 푸틴을 옹호하고 체리 과수원을 하는 외가 쪽은 공포에 떤다. 신간 ‘루스터 하우스’는 이 기막힌 혈연의 굴레를 파고드는 책이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외가의 과수원을 찾았던 저자가 우연히 미스터리했던 가족사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회고록이다. 전 세계 18개국에서 번역 출간될 만큼 주목도가 높다.
저자의 삶의 궤적은 독특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적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고, 소비에트 연합(소련)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갔고, 성인이 되어서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가 되어 벨기에 브뤼셀에 정착했다.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등 구사하는 언어만 20개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저자는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외가의 체리 과수원을 찾는다. 저자에겐 유년의 고향이었다. 그는 우연히 외증조부 세르비의 친형 니코딤(외증조 큰할아버지)의 존재를 먼지 쌓인 공책에서 발견한다. ‘니코딤 형, 자유로운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다가 1930년대에 실종.’ 이 문장이 진청색 잉크로 적혀 있었다. 세르비에게 니코딤을 물어봐도 회피하거나 화제를 돌렸다.
1930년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면 니코팀은 정치범으로 몰려 실종됐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저자를 가족들은 타박하기까지 한다.
“그 일의 결과를 떠안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어떤데? 과거를 들쑤시는 짓 그만해.”
1930년대 스탈린의 공산당 정책으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던 인쇄소와 극장은 문을 닫았다. 우크라이나어 교사였던 니코딤은 스탈린의 숙청 정책에 따라 희생양 중 하나로 정해졌다. 니코딤의 옛 조상은 몇만 제곱미터의 땅을 소유한 쿨락(부농)이었는데, 이 부분까지도 꼬투리를 잡힌 것이다.
거짓과 일부의 진실이 섞인 조사서에서 니코딤은 ‘소련 국가 전체를 망치려는 사람’으로 몰렸다. 술집에서 우크라이나어로 신문 기사를 읽어준 일이 스탈린 정책을 맹비난한 것으로 오인된 것이다. 니코딤은 아침 식사 후 감방 문의 창살에 목을 매단 것으로 옛 문서는 전하고 있었다. “재킷 안감을 찢어 만든 끈으로 스스로 목을 맸다.” 그러나 기록조차 거짓 위장일 가능성이 컸다.
우크라이나의 니코딤과는 반대로, 저자 친척인 러시아 국적의 큰아버지는 아직도 ‘이미 망한 소련’의 은하계에서 살고 있었다. 소련이 파시즘(나치)으로부터 세상을 지켰고, 인류 최초로 인간을 우주로 보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큰아버지는 저자에게 이메일을 수시로 보내며 “어느 체제에나 결함이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더 심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소련을 궁핍, 상점의 텅 빈 선반 이미지로 기억하는 반면, 큰아버지는 옛 소련을 핵무기와 강력한 군대로 기억한다. 이쯤에서 책 제목 ‘루스터 하우스’의 정체가 나온다. 루스터 하우스는 우크라이나 도시 폴타바의 한 건물로 1930년대 KGB가 우크라이나인을 감금, 고문하던 장소였다.
화려한 색감과 아치형 날개, 고대 러시아 건축의 요소를 포함한 이곳은 지금은 관광명소이지만 1930년대 루스터 하우스 인근 거주민은 ‘건물 땅 밑’의 비명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전쟁의 포성과 연기가 뒤덮인 우크라이나 앞에서 저자는 쓴다. “나는 니코딤에 관한 진실을 찾는 일에 몰두했다. 자유로운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다가 제일 큰 대가를 치른 니코딤 외증조 큰할아버지의 입지를 우리 가문의 역사에서 바로 세우고 싶었다.”
가족의 한 구성원에 관한 한 줄짜리 단서만으로 그 집안이 4대에 걸쳐 경험했던 100년사, 나아가 세계 현대사의 흐름을 움켜쥐는 매력이 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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