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법농단, 재판 독립 파괴” 징역 7년 구형···양승태 “정치권력의 사법부 공격”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사법농단 사건의 책임을 물어 징역 7년을 선고해달라고 15일 법원에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사건이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의 사법부 공격”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 사건은 전직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재직 때의 직무와 관련된 혐의로 기소된 헌정사 첫 사건이자, 사법행정권의 범위·한계를 법원이 형사재판에서 판단하는 첫 사례이다.1심 재판부는 오는 12월22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징역 5년,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징역 4년을 구형했다. 2017년 3월 사법농단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 6년6개월, 2019년 2월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 지 4년7개월 만에 1심 심리가 이날 마무리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법관과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47개의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사실에는 박근혜 정부의 협조를 받을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가 의견서를 낼 수 있도록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 도입을 검토시킨 혐의(직권남용)가 있다. 법원 내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이 상고법원·인사제도·대법관 구성 등에 의견을 내자 연구회 와해를 지시한 혐의, 특정 성향이라는 이유로 판사들 정보를 수집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도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재판의 당사자도 아닌 사법부의 조직적 이해관계가 고려된다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어떤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행정처는 재판 담당 법관을 접촉해 재판의 결론에 따른 사법부 조직의 유불리를 환기시키고 특정 판결을 요구·유도함으로써 재판 독립의 환경을 파괴했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들의 행위로 인해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는 철저히 무시됐고, 재판 당사자들은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이 사태를 지켜본 국민들은 과연 사법부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는지 깊은 좌절감을 토로하고 있다”고 했다.
피고인들은 사법농단 사건은 허구이고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정치세력에 의한 사법부 장악시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최후진술 기회를 얻어 “사법부에 대한 정치세력의 음험한 공격이 이 사건의 배경이고, 검찰이 수사라는 명목으로 그 첨병 역할을 했다”면서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무엇이든 옭아맬 것을 찾아내기 위한 먼지털이식 수사였고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모든 대법관들과 더불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느라 심리를 미처 끝내지도 못한 중차대한 징용 사건으로 도대체 무슨 재판 거래를 한다는 말이냐. 통상적인 인사자료가 어떻게 블랙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며 “우리에게는 죄가 될 게 없다. 만약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법적인 죄가 아니고 정치적인 굴레일 것”이라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대법원 최윗선의 의사결정권자가 법원행정처의 법관·재판 독립 침해 행위를 승인했는지가 유·무죄를 가를 핵심 쟁점이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의 상명하복 풍토 속에 양 전 대법원장이 정한 방침을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수행했다고 본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등은 법원행정처 보고서에 법관과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일부 내용이 있더라도 자신들은 그런 보고서를 쓰라고 지시한 적이 없어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재판 개입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현재까지 2명의 전직 법관이 사법농단 사건으로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법원은 재판 개입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사법행정권자가 일선 재판부의 재판에 개입하는 위헌적 행위가 있었더라도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권’은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검찰은 “재판 독립을 가장 직접적으로 침해한 재판부 상대 재판 개입, 재판부 법관에 대한 직접적인 외압에 대해 범죄 성립을 부정하는 것은 그 누구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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