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 4기, 디트로이트의 장벽을 부수다

김종수 2023. 9. 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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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않는 서사, 완벽했던 조던의 스토리④

 

나는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다. 모두가 무언가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마이클 조던-

‘동안의 암살자’ 아이제이아 토마스(62‧185cm)는 역대 최고의 가드중 한명이다. 신장은 작지만 단신 가드의 장점인 스피드에 더해 상대 센터의 공격까지 블록슛으로 쳐낼 만큼 탄력 또한 대단했다. 시야와 볼 핸들링이 워낙 좋은지라 낮은 드리블로 코트를 휘젓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줬다.


투박한 선수가 많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기계적인 조직력을 자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고 포인트가드 토마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평가다. 체격이 크지 않은 관계로 골밑에서 우겨넣거나 하는 등의 플레이는 쉽지 않았고 거기에 슈팅 능력까지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득점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집요한 드리블을 통해 어떻게든 공격을 성공시켰다.


드리블을 엄청나게 잘했다는 것 외에 특별하게 돋보이는 스킬은 없었지만 운동능력과 BQ를 앞세워 게임 자체를 이기게 만드는데 탁월했다. 모든 영역에서 두루두루 고르게 잘했다고 보는게 맞겠다. 약점으로 꼽히던 슈팅마저 중요한 상황에서는 상당한 정확성을 보이며 상대 수비진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큰 게임에 강한 승부사였음을 알게 해준다.


역대급 수비수 마이클 조던(60‧198cm)이 마음먹고 수비해도 나름 할 것은 다했을 정도다. 실제로 조던 또한 토마스를 싫어하면서도 빼어난 실력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만화 ‘슬램덩크’속 강호 해남대부속고의 주장 이정환과 매우 흡사해 팬들 사이에서 실제 모델로 지목되기도 했다.


리더십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당시 배드보이즈 선수들이 누구인가. 나름 다들 잘났고 전투적인 마인드로 똘똘 뭉친 빌런(외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들이었다. 그렇게 개성이 풍부한 선수단에서 부동의 리더로 인정받은 것으로 검증은 끝이다. 그를 가리켜 많은 이들은 카리스마와 영리함을 두루 갖춘 보스 타입의 리더라고 평가했다.


'하얀 악마' 빌 레임비어(66‧211cm) 또한 엄청난 선수였다. 1979년 NBA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65순위로 뽑힌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단한 유망주는 아니었다. 사이즈는 좋지만 운동 능력이 떨어졌던지라 비슷한 시대에 존재했던 다수의 덩치 큰 백인 빅맨들처럼 몸빵이나 하면서 살아남을 것으로 봤던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매우 영리한 성향의 소유자였고 코트 위에서도 BQ가 좋은 선수였다. 긴 슛거리와 센스를 살려 수준급 득점력을 보여준 것을 비롯 영리한(+더티한) 수비를 통해 리그 최고의 디펜더중 한명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은퇴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치렀던 경기에서도 올랜도 시절의 젊은 샤킬 오닐을 맞아 놀라울 정도로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기도 한다.


몸싸움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고 특유의 영리하고 능글능글한 플레이를 통해 오닐의 경기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렇듯 공수에 걸쳐 알토란같았던 활약을 펼쳤던 레임비어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다른 쪽으로의 기억이 훨씬 강렬하다. 반칙왕, 더티한 인간, 위험한 파울러 등이 그것이다.


‘떨어지는 운동능력을 더티플레이로 커버하는 비겁한 놈이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칫 선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위험한 플레이를 서슴치않고 저질렀다. 거기에 심판이 반응하지 못할 만큼 지능적으로 반칙을 펼치거나 상대의 신경을 긁어놓고 외려 피해자처럼 구는 등 영악하기 그지 없었다. 당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는 래리 버드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주먹을 날릴 정도였으며 그 외 상당수 스타 플레이어들과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거기에 대해 레임비어는 은퇴 후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 한명은 팀에서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 나는 팀에서 가장 운동신경이 좋은 것도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하지만 욕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고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적으로는 지긋지긋하지만 같은 팀일 때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선수였다고 보면 맞다.


토마스와 함께 가드 라인을 이끌어간 조 듀마스(60‧191cm) 같은 경우 악동 군단 디트로이트에서 보기 드물게 매너가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코트의 신사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위험한 반칙을 덜했기 때문으로 어떤 면에서는 배드보이즈와 함께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깔끔해 보였을 수도 있다. 자신보다 크고 기술이 좋은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까지 잘 막아냈을 정도로 수비에서 존재감이 빼어났다.


토마스라는 역대급 가드가 중심을 잡아주기는 했으나 디트로이트에는 팀 전체의 공격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는 매직, 버드같은 전천후 기술자나 조던같은 폭발적인 득점 머신은 없었다. 플레이오프에 올라가기에는 무리가 없는 멤버 구성이었지만 그보다 높은 곳을 노리기에는 화력이 떨어졌다. 이에 그들은 승부 자체를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는 방법을 선택했고 많은 스타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이러한 디트로이트에게 조던과 시카고는 3년 연속으로 고배를 마시며 고개를 떨군다. 조던 농구 인생에서 특정 상대에게 이렇게까지 좌절한 것은 디트로이트가 유일하다. 조던의 대단한 점은 어떤 위기가 와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조던은 근육량을 늘리면 스피드가 떨어질까봐 웨이트 트레이닝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개를 떨구게 되자 더 이상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파워를 키워서 힘으로 대항해야만 했다. 다행히 조던은 몸을 키우면서도 운동능력을 유지했고 더 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다음 시즌 드디어 디트로이트를 박살내고 파이널에 진출한다. 그야말로 소년 만화같은 성장기 혹은 극복기라고 할 수 있다.


시카고는 1990~91시즌 디트로이트를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4전 전패로 무너뜨리고 그동안의 패배에 대한 한을 씻어낸다. 동부의 지배자이자 리그 최고 악동들의 시대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토마스와 레임비어 등은 퇴장 역시도 배드보이스러웠다. 선배인 토마스가 조던을 안아주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 지난 일은 잊고 꼭 파이널에서 우승하기를 바란다. 이제부터는 너의 시대다'는 덕담을 건넸으면 무척 훈훈했겠으나 자존심 강한 배드보이들은 보여주기식 예의조차 거부했다.


경기 종료 7.9초를 남겨두고 주축 멤버들이 하나둘 퇴장해버렸다. 이를 지켜보는 조던의 표정은 그야말로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유이하게 듀마스와 존 샐리 둘만 악수를 나눴다. 너무도 높게보였던 디트로이트의 장벽을 넘은 조던은 이후 승승장구했고 ‘농구 황제’로서의 명성을 본격적으로 쌓아나간다.


탄탄한 조직력, 지독한 수비, 징글징글할 정도의 더티플레이…, 어쩌면 디트로이트가 있었기에 조던은 더더욱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같은 스토리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조던 서사에서의 시선이다. 디트로이트는 최선을 다해서 괴물같은 득점머신이 이끄는 팀을 막아내고 또 막아냈을 뿐이다. 리그 정상급 득점원도, 탑급 센터도 없이 조직력, 수비 등으로 3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해 2번의 우승을 가져갔다는 점은 배드보이즈의 위대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점프볼 DB, 아이제이아 토마스 트위터 이미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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