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 소재, 中 의존도 줄인다”
유럽연합(EU)이 반도체와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 원자재의 대(對)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CRMA) 최종안을 마련했다. 최근 유럽 내에선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에너지 안보’가 또 한 차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그린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배터리용 리튬, 태양광 전지판의 반도체용 실리콘 같은 핵심 원자재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절박감이 커지고 있다.
유럽의회는 14일(현지 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리튬 등 원자재 공급망을 다양화하고 광산 회사에 대한 복잡한 행정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CRMA 협상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찬성 515표, 반대 34표로 통과된 이 법안의 세부 사항은 의회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법안을 제안한 리뉴 유럽 소속 니콜라 비어(Nicola Beer) 독일 하원 의원은 “유럽 주권 확보, 경쟁력 확보를 향한 길은 이미 정해졌다”면서 “이번 투표에서 모든 정치 집단의 압도적인 다수를 확보한 유럽의회는 에너지 공급과 관련한 안보에 대한 입장을 매우 명확하게 밝힌 것에 다름 없다”고 말했다.
마커스 베이어 비즈니스 유럽 사무총장도 “중요 원자재 공급처를 확보하고 다양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면서 “유럽 의회가 이 법의 주요 사항을 개선하고 허가 절차 간소화, 기업 규제 완화, 무역 파트너들과의 파트너십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고무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CRMA 협상안은 2030년까지 제3국이 생산하는 전략적 원자재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 법안으로, 역내 제조역량 강화를 위한 보조금 지원 확대, 신속 허가 조처가 포함됐다. EU는 12월까지 3자 협상을 마무리하고 CRMA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의회·이사회·집행위가 모이는 3자 협상은 유럽연합 입법 절차에 따라 새 법안 시행을 확정하기 전 거치는 최종 절차다.
그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으로 인해 유럽 지역에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차질이 생기면서, 중국 의존도는 높아졌다.
우선 태양광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EU는 오는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45%를 태양광, 수소,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확보할 계획이다. 이러한 가운데 태양광은 재생에너지 중 비중이 가장 큰 전력으로 꼽힌다. 그러나 글로벌 태양광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유럽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하면서 EU의 에너지 자립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EU 태양광 수입량의 약 65~70%를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다. 유럽 내 생산 비용의 절반 수준으로 태양광 모듈 가격을 대폭 끌어내렸다.
또 희토류의 경우 유럽에서 수입하는 물량의 99%% 중국산으로 알려졌다. 희토류는 전기자동차, 스마트폰 배터리의 핵심 연료로, 이들 산업 부문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군용 반도체와 소자, 레이더 등에 사용되는 주요 전략용 광물 13개 중 텅스텐·바나듐·희토류·갈륨 등 8개는 중국의 지원 없이는 제품 생산이 어렵다. 적어도 2030년까지는 각종 핵심광물의 공급을 간접적으로라도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전기차의 핵심 소재인 ‘하얀 석유’라고 불리는 리튬 역시 중국 의존도가 높다. 원자재 컨설팅업체인 CRU 그룹의 추산으로는 중국이 세계 리튬 채굴량의 28%를 차지한다. 광물 가공 부분에서는 약 7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해외 자원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EU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중국이 세계 시장을 60% 이상 점유하고 있는 주요 광물은 디스프로슘(100%)·테르븀(100%)·갈륨(94%)·마그네슘(91%)·네오디뮴(85%)·게르마늄(83%)·천연흑연(67%) 등이다.
이사회와 의회가 각각 마련한 이번 협상안에는 양쪽 모두 ‘역내 가공’ 목표치를 기존 40%보다 상향한 50%로 설정하자는 입장이다. 이러한 협상안이 최종안에 반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특별관리’ 대상에 오를 전략원자재 목록도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초안에는 리튬, 코발트를 포함한 16가지가 전략원자재 지정 대상으로 제시됐으나, 이사회는 알루미늄도 추가하자고 3자 협상에서 제시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원자재를 확보하려면 광산 개발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의 환경운동가들은 이 법이 자연을 보호하지 못하는 악법이 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다양한 광물들이 있는 광산을 보유한 핀란드와 같은 국가가 무분별한 광산 개발로 환경이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유럽의 환경단체들은 “광산 개발 업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환경 기준을 무시하고, 광산 허가증을 받기 위한 속도를 내는 데만 혈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U는 조만간 3자 협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3자 협상이 타결되면 이후 형식적 승인 절차를 거쳐 법이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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