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1명에 막혔다... 美 육해공 총장 수개월째 직무대행 체제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3. 9. 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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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中 맡은 장성 포함 300명 직무대행
공화의원, 펜타곤 ‘낙태 지원’에 반발
‘무더기 만장일치’ 인준 관례 깨고 발목
한 명씩 인준땐 하루 8시간씩 89일 걸려

미국의 육ㆍ해ㆍ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 우주군 사령관이 미 연방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해 내정된 후임자나 타인이 수 개월째 직무대행을 하는 ‘서리(署理)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또 6개월 넘게, 140만 명의 미군을 지휘할 장성급 장교 300여 명의 승진ㆍ보직 인사에 대한 상원 인준이 보류되고 있다.

다음 달 1일이면 마크 A 밀리 현 합참의장도 퇴역한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에 후임 합참의장으로 지명한 찰스 Q 브라운 공군 대장도 상원 인준 절차가 중단되면서, 당분간은 현 합참부의장인 크리스토퍼 그래디 해군 제독이 직무대행을 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차기 합참의장으로 지명한 찰스 브라운 주니어 미 공군참모총장. 마크 밀리 현 합참의장은 10월1일 퇴역한다. 그러나 브라운 차기 의장에 대한 상원 인준은 보류된 상태다. / EPA 연합뉴스

미군 장성에 대한 인사는 문민 통제의 원칙과 헌법에 따라, 장관ㆍ대사 등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을 연방 상원이 인준(confirmation)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무더기로 ‘만장일치’ 인준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법안 심사나 주요 정무직 지명자에 대한 검증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공화당의 초선 연방 상원의원(앨라배마 주)인 토미 튜버빌(Tuberville) 한 명이 반 년 넘게 상원 인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원인은 작년 10월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밝힌, 미군에 대한 낙태수술 지원 정책이었다. 튜버빌은 작년 7월 연방 대법원이 낙태를 헌법 상 보장된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 상황에서, “왜 연방 세금으로 미군의 낙태 수술을 지원하느냐”고 반발했다.

미 국방부의 낙태수술 여행 경비 지원 정책에 반발해, 미군 장성 인사에 대한 '무더기' 인준 관례를 막은 토미 튜버빌 공화당 상원의원/AP 연합뉴스

미 상원이 군 장성 인사에 대해 관례대로 ‘무더기 만장일치’ 인준하지 않을 경우, 장성 한 명씩 계속 불러내서 투표해야 한다. 미 의회조사국이 계산한 바로는, 24시간 쉼 없이 인준 절차를 밟아도, 30일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발단은 국방부의 ‘새로운’ 낙태 지원 정책

작년 10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미군이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배치된 주를 벗어나 수술이 가능한 타주(他州)로 여행할 경우 최대 21일까지 여행 경비를 지불하는 휴가를 허용한다”는 메모를 발표했다.

이 메모는 작년에 연방 대법원이 반 세기 동안 ‘헌법 상 권리’로 보장했던 낙태권에 대한 기존 판결을 뒤집은 뒤에 나왔다. 이 판결이 있은 뒤, 미국 남부와 중부를 중심으로 22개 주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법을 잇달아 제정했다. 예를 들어, 튜버빌 상원의원이 속한 앨라배마 주는 ‘임모(妊母)의 목숨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는 전면 금지다.

워싱턴 DC의 9/11 테러 22주년 행사에 참석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다음달 1일 퇴역하는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AFP 연합뉴스

미군은 개인 의사와 관계없이 지역을 배치 받는데, 어떤 주에선 낙태 수술을 쉽게 받을 수 있고 어떤 주에선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하게 됐다. 오스틴 장관의 메모는 결국 ‘형평의 원칙’에 맞게, 낙태 수술이 허용되지 않는 주에 배치된 미군이 허용되는 주까지 여행하는 경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튜버빌은 “헌법 상 보장되지도 않은 권리를 위해서, 또 보수 진영의 상당수가 반대하는 낙태수술 관련 여행 경비를 연방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 최초의 여성 해군참모총장도 인준 보류

지난 2월부터 튜버빌의 입장과 오스틴 장관의 낙태 정책이 맞붙으면서, 미 공군의 경우 후임 참모총장을 비롯해 미사일방어국 국장, 미 태평양 공군 사령관 등 모두 98명의 장군에 대한 인준이 보류됐다.

콜린 파월에 이어 흑인으로선 두 번째로 미 합참의장에 오르게 되는 현 공군 참모총장인 찰스 Q 브라운 대장도 인준이 보류됐다. 잠시 동안 상원의 인준을 받은 미 합참의장이 없었던 시절은 1993년 콜린 파월에서 존 샬리카시빌리로 넘어가던 때 한 번이었다고 한다.

육군도 육군참모총장 랜디 A 조지 대장을 비롯한 장성 91명에 대한 인준이 보류됐고, 해병대는 7월 초부터 직무대행을 하는 차기 해병대 사령관 에릭 M 스미스를 비롯해 18명의 장군 인사 인준이 보류됐다.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한 해병대 사령관이 존재하기는 1910년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리사 프란체티 미 해군 참모총장 지명자가 자신의 인준과 관련해, 14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 해군 최초로 여성 참모총장에 지명된 리사 프란체티 제독도 인준 보류로, 8월 중순부터 직무대행하고 있다. 또 프란체티의 뒤를 이을 해군 참모차장 등 86명의 미 해군 제독이 상원 인준 절차에서 멈췄다. 우주군에서도 대장으로 진급해 사령관에 취임하는 스티븐 파이팅 중장 등 8명이 인준이 보류됐다.

뉴욕타임스는 “직무대행 체제에선, 충원을 위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관사로 들어갈 수도 없다”고 밝혔다. 사령관이 장기적인 비전을 강조하기도 힘들다.

◇북한ㆍ중국 맡은 태평양 미군 수뇌부 20여 명도 서리 체제

워싱턴포스트의 지난 8월 분석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작전을 지휘할 태평양 지역의 미군 최고 수뇌부 20여 명도 모두 상원 인준이 보류돼 직무대행을 하고 있다.

대장으로 진급해 태평양 공군 사령관이 되는 케빈 슈나이더 중장, 일본 주둔 미 해병대 사령관을 맡는 로저 터너 소장, 주한미군 부사령관 스캇 L 플리우스 중장, 제7공군 사령관 데이비드 R 아이버슨 소장, 제2보병사단(캠프 험프리)의 부사령관 브랜든 C 앤더슨(준장 진급), 유엔군사령부 소속인 미 해군의 닐 A 코프로스키(준장 진급) 등이 이에 해당된다.

미군 정책을 연구하는 듀크대의 피터 D 피버(Feaver) 교수는 “제복 입은 군인은 문화 전쟁에서는 비전투요원(noncombatants)인데, 그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통점 많은 튜버빌 의원과 오스틴 국방 장관

두 사람은 모두 앨라배마 주 출신이다. 오스틴 장관은 앨라배마 주의 오번(Auburn)대에서 석사를 받았고, 이 대학에서 이사로 재직했다. 튜버빌은 오번대의 미식축구팀 감독이었다. 그래서 튜버빌은 오스틴 장관을 ‘동향(同鄕)’으로 여겼고,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중에선 흔치 않게 오스틴 국방장관 지명자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오스틴 장관이 낙태 지원 정책을 내놓자, 튜버빌은 ‘만장일치’는 없다고 계속 경고했다. 오스틴은 이를 무시했다. 오스틴으로선 이슈가 될 만한 국방 정책은 처음부터 의원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실기(失機)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장군 한 명씩 불러내 인준 투표를 하면

튜버빌이 만장일치 통과를 반대해도, ‘이론적’으로는 인준할 방법이 있다. 승진ㆍ보직 인사 대상 장군들을 한 명씩 불러 투표하는 것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이렇게 할 경우 모두 737시간(약31일)이 걸린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이것은 상원의원들이 24시간 내내 전혀 쉬지 않고 인준에만 매달린다는 불가능한 가정 하에서 산출한 것이다. 만약 하루 8시간씩 인준에만 매달려도 89일 걸린다고 한다. 그나마 이는 인준 대상 장군 수가 273명이었을 때에 계산한 것이다. 연말이면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한 미국의 장군 수가 650~852명까지 늘어난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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