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지렁이처럼
지렁이의 경외할 만한 능력
사회악 품고 정화해야 하는
종교인에 같은 역량 필요
장마철이 지난 후 땡볕이 내리쬘 무렵이면 우리 학교 교정의 언덕 쪽으로 난 도로에 지렁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바위가 많은 산비탈에 건물을 짓고 건물 앞에 도로를 냈으니, 아마 산비탈로 스며드는 습기에 의해 지렁이가 서식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라 그렇게 지렁이가 많은 듯하다. 여하간 그 도로를 건너는 지렁이들이 내 눈에는 참으로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열에 말라죽은 놈들도 있고, 지나다니는 차나 사람에 밟혀 죽은 놈들도 있다. 비 온 뒤 맑게 갠 날에는 이런 처참한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안간힘을 다해 도로를 기어가는 지렁이들에게 이 도로는 마치 '죽음의 사막'이겠다 싶어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무엇을 향해 엄청난 고통을 무릅쓰고 저 죽음의 도로를 건너는 것일까.
사실 나는 지렁이는 느낌상 징그럽다는 것, 그리고 그저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미끼의 용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지렁이의 생태에 관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알게 된 과학적 사실 때문에, 지렁이에 대해 무척 강한 경외심과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하나는 지렁이의 자기 복원력에 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렁이의 토양 정화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지렁이는 자기 몸이 둘로 쪼개지면 그 잘린 나머지 반쪽이 그대로 복원되어 일정 기간 후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된다는 마술 같은 내용이 다큐멘터리에서 실험 영상으로 나왔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었다. 그리고 토양 복원 능력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는데, 공업용 폐기름에 오염된 흙을 지렁이가 양질의 흙과 조금씩 섞어 먹으며 완전히 정화하여 깨끗한 옥토로 변한 흙을 배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험 대조군으로 하나의 플라스크엔 온전히 공업용 폐기름에 찌든 흙만 담아 지렁이를 그 안에 넣었고, 다른 하나엔 폐기름에 찌든 흙과 조금 깨끗한 흙을 플라스크 한쪽에 몰아넣어준 다음 지렁이를 넣었다. 폐기름에 찌든 흙만 담은 플라스크 속 지렁이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죽었지만, 다른 플라스크에 있는 지렁이는 양질의 토양을 근거로 전체 오염된 흙을 조금씩 섞어 먹어 옥토로 정화하여 배설하는 것이었다. 땅을 생산성 높은 옥토로 바꿔주는 일등 공신이 바로 지렁이였다.
이렇게 오염된 토양을 옥토로 변화시키는 지렁이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이 지렁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부터 나는 생태환경 관련 활동가들이나 모임 혹은 평범한 사석에서 자연스레 나누는 환경 관련 대화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지렁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절할 수 있다"고 언급하곤 한다. 지렁이의 이런 생태적 특성 때문이었는지,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집에서 가꾸는 화분에 지렁이를 키우며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도록 고안된 장치가 한동안 널리 사용되기도 했다.
더럽고 해로운 것을 자기 몸으로 받아들여 먹고, 오히려 좋고 유익한 옥토로 변화시켜 토해내는 지렁이의 역할은 어쩌면 우리 같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삶을 '세상의 정화'를 위해 수도생활을 한다는 그 본연의 취지에도 합당한 역할일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영역에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구석이 많이 널려 있고, 더 나아가 악행이나 범죄 행위가 적나라하게 행해지는 순간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러니 지렁이가 더럽고 오염된 주변 환경을 한 조각 깨끗한 흙과 섞어 먹어 정화하여 토해내듯, 우리 마음의 선한 지향 한 조각으로 우리 주변 사회의 악을 품어 정화하여 토해내는 삶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지렁이의 생태를 통해 우리 스스로 삶을 성찰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듯하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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