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이재명이 죽어야 이재명이 산다

천남수 2023. 9. 1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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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투쟁 16일차인 1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회 당대표실에서 조응천 의원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먼저, 오늘(15일)로 단식 16일째를 맞는 이재명 대표에게 ‘죽어야 산다’는 제목의 칼럼을 쓴다는 것이 참으로 모질다는 생각을 밝힌다. 보통 단식한 지 보름 정도가 지나면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단식 16일째인 이 대표의 상태에 대해 의료진도 공복 혈당 수치가 매우 낮고 신체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의료진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의 단식 중단과 입원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단식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 대표를 향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건강을 해치는 단식을 중단하실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단식에 들어간 지 14일째 되는 날이었다. 김 대표는 “거대 야당의 대표가 정부 국정운영을 점검하고 내년 나라 살림을 챙겨야 하는 정기국회에서 단식을 계속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일 김 대표는 기자들이 “이 대표에게 단식 중단을 권유하러 갈 생각이냐”고 묻자 “지금 단식하고 계신가? 잘 모르겠다”고 한 바 있다.

그날 같은 질문을 받은 국민의힘 강민국 대변인은 “단식쇼를 하는데 여당이 백댄서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했고, 한발 더 나아가 장동혁 원내 대변인은 “단식인듯, 단식아닌 웰빙 단식으로 다음 패는 입원이고, 그 다음 패는 휠체어 (검찰)출석”이라고 논평했다. 단식 중인 야당 대표를 향한 여당의 조롱과 모욕적인 언사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대표의 단식이 보름을 넘기고, 건강상태도 나빠지자 여당도 여론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단식 중인 이 대표를 직접 찾을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취임 1주년을 맞아 전격적으로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대표의 느닷없는 단식에 여론도 분분했다. 그는 단식 9일째인 9일 대북 송금 의혹으로 검찰에 출석해 8시간 조사를 받았고, 13일 다시 검찰에 출석해 2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으면서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리고 단식 보름째 되는 날에야 단식 중단을 요청하는 여당 대표의 첫 반응이 나왔다. 이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자 단식을 지지하면서도 단식중단을 요청했던 야권의 반응과는 대조를 보였다.

실제로 이재명 대표의 단식에 대해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진영의 평가는 크게 갈리고 있다. 앞서 이 대표의 단식을 대하는 국민의힘의 태도가 여당과 보수 진영의 반응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언론도 ‘이재명 단식 출구전략’을 운운하면서 그의 단식을 두고 여러 가지 정치적 속셈을 분석하는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단식이 멈추지 않자, 야권 지지자를 중심으로 분위기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청년위원회 회원들은 단식 중단 촉구 삭발을 하는가 하면, 일부 열성 지지자는 이 대표의 병원 이송을 요구하면서 난동을 부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재명 대표의 단식은 정국의 뇌관이 됐다. 국민적 관심과 이슈의 무게감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단식이 계속될수록 향후 이 대표의 건강 상태도 예측할 수 없다. 여당 대표의 뒤늦은 단식 중단요청이 있었지만, 이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면서 제기한 현안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있는 대통령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사죄와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 입장 천명,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 단행”을 요구하면서 단식에 돌입했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단식 중단을 할 수도 없다. 단식을 중단할 어떠한 명분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저 건강을 위해 단식 중단을 요청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강경한 태도에 여당도 이렇다 할 대응책이 없다. 민주당 내에서 아무리 단식 중단을 요청하더라도 의미가 크지 않은 것도 고민이다. 이는 대화와 타협이 없는 대립과 정쟁의 한국 정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치킨게임으로 전락한 정치권의 한계를 여실히 절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의식불명이나 혈당 저하 등 이 대표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지 않는다면, 야당 대표의 단식을 중단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한국 정치의 폐해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 대표의 단식을 지켜보는 국민은 갈수록 한숨만 깊어가고 있다. 물론 정치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틈엔가 이념 문제가 우리 국민을 갈라놓고 있는 이 한탄스러운 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대결정치, 극단의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화해할 수 없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그럼, 이재명 대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단식은 사회적 약자가 선택하는 투쟁 방식이다. 이 대표로서는 윤석열 정부의 탄압에 맞설 수 있는 최후 수단으로 단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칼럼의 제목처럼 모진 얘기같지만, 이재명이 죽어야 이재명이 산다고 권할 수밖에 없다. 죽는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을 버리는 일이다. 더 이상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동도 하지 않는 대통령실과 여당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죽는 것이 사는 것이라면, 이는 자신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선 단식 중단 선언과 함께 국회의원들에게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찬성을 요청해야 한다. 지난 국회 대표 연설에서 천명했듯,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당당하게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당당하게 나아갔을 때 국민은 지지를 보낼 것이다. ‘방탄 국회’ ‘내로남불’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낼 수 있다. 몸을 해쳐 가면서 싸워온 결기를 이렇게 보여줘야 국민이 믿는다. 오랜 단식으로 만신창이 몸이 됐지만, 그래도 정신만은 또렷하게 국민 앞에 서 있음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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