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의 무관심’ 독립운동가 명예졸업장 땅바닥에 한시간 방치
육군사관학교로부터 명예졸업증서를 받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15일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에 항의하며 졸업증을 반납했다. 육사 측은 반납 사실을 알고도 졸업장을 받으러 나오지 않았다. 졸업장은 한 시간 넘게 위병소 앞 아스팔트 바닥에 방치됐다.
신흥무관학교 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장을 역임한 규운 윤기섭 선생 후손,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 후손,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국가원수)인 석주 이상룡 선생 후손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노원구 육사를 방문해 명예졸업증서를 반납했다.
윤기섭 선생의 외손자인 정철승 변호사는 “육사는 조국을 되찾고 겨레를 살리기 위해 몸과 생명을 바쳤던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투사의 숭고한 호국 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없기에 수치스러운 명예졸업증을 되돌려준다”고 밝히고 졸업증을 내려놨다.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육사의 이번 처사는 대한민국 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자 육사의 역사에서 독립운동을 지워버리겠다는 단절 선언”이라며 “이 졸업 증서도 의미가 없게 됐다. 휴지 조각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명예졸업증을 받은 2018년만 하더라도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히는구나’ 싶어 굉장히 뿌듯했는데 5년 만에 뒤집히는 걸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전날 경향신문 보도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명예졸업증을 반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육사는 “1945년 12월 개교한 ‘군사영어학교’를 모체로 1946년 5월 ‘남조선국방경비대사관학교’로 창설되었고, 1948년 9월 5일 국군 창설과 더불어 현재 명칭인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며 육사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라는 지난 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다만 “독립군을 양성한 신흥무관학교를 포함해 대한제국육군무관학교, 임시육군무관학교 등 근대적 군사교육기관들도 육사의 정신적 연원으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졸업증 반납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이 전 관장은 “이제와서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사후변명”이라면서 “계승이 진의라면 흉상을 철거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정 변호사도 “육사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더라도 독립운동가들이 자격 없다고 하실 것”이라며 “일본 부역 하에서 동족을 살상한 백선엽 장군을 존경하는 육사가 어떻게 독립운동가를 계승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육사는 이날 명예졸업증 반납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후손들은 “전직 육사 교장의 로고가 있는 졸업증서를 반납하는데 위병장교는커녕 일반 사병도 나오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결국 후손들과 경찰, 취재진이 철수한 지 한 시간이 지난 오후 4시31분에야 육사 관계자가 나와 졸업증을 회수했다.
육사가 회수한 졸업증이 어디에, 어떻게 보관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육사 관계자는 “반납하신 명예졸업증은 육사에서 보관하고 필요조치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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