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보관 이유 없어" 독립운동가 후손들, 육사 명예졸업장 반납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가 교내 설치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고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이전하기로 결정한 데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청천 장군 등 3명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육사로부터 받은 명예졸업증서를 더 이상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며 육사에 반납했다.
15일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과 윤기섭 선생의 외손자인 정철승 변호사, 석주 이상룡 선생의 후손인 이항증 씨 등 3명은 이날 육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육사의 흉상 철거 및 이전 조치는 "독립운동과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라며 "육사는 조국을 되찾고 겨레를 살리기 위해 몸과 생명을 바쳤던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투사들의 순고한 호국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 육사에 설치될 때 3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명예 졸업증서를 받은 바 있다. 지청천 장군은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었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었다. 윤기섭 선생의 경우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임시의정원 의장(국회의장 격)을 지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임시정부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로 지도 체제를 개편했을 때 초대 국무령을 역임하고 공동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육군사관학교가 2018년 2월, 일제강점기 독립군 학교였던 신흥무관학교를 모태이자 정신적 뿌리라고 공식 발표하고, 육사 한가운데에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다섯 분의 흉상을 모시면서 신흥무관학교와 관련된 독립운동가들에게 명예 졸업증서를 수여한 것은, 2012년에 결성된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의 오랜 노력의 결과였다"고 전했다.
이들은 "헌법 전문에 천명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면 육군사관학교의 모태는 마땅히 신흥무관학교여야 할 것임에도, 2012년 당시에는 육사와 국군의 모태는 미 군정기 군사영어학교와 국방경비대라는 것이 군의 공식 입장이었다"며 최근 국방부의 입장이 당시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는 2012년 결성된 후, 수년 동안 여러 학술대회를 비롯한 행사와 청원 등 꾸준한 노력을 하여 마침내 2018년, 육군사관학교가 공식적으로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인정하고, 독립운동가 다섯 분의 흉상을 설치했던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에, 육사 출신 국방부 장관과 육사, 그리고 육사 총동창회가 신흥무관학교, 뜨거운 애국의 역사와 전통을 스스로 지우는 모습을 보면서, 육군 사관학교는 태생적으로 부정과 원죄가 너무나 뿌리가 깊어, 이를 바로잡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뼈아픈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철승 변호사는 "(독립운동가들이) 일제강점기에도 풍찬노숙하셨지만, 전혀 그러한 삶을 후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명예로 여기셨을 것"이라며 "그런데 해방된 이 나라에서 일제강점기보다도 더 험한 모욕을 당하고 계셔서 이 명예 졸업증서를 반납하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명예졸업증서를 반납하는 것에 대해 아쉬운 부분은 없었냐는 질문에 "명예 졸업증서가 하루 아침에 휴지가 되어 버리고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에게는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것이 되어버렸다"며 "육사 스스로 휴지로 만든 졸업증서를 다시 반납하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고민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정 변호사는 "육사가 자랑스러운 선배라고 모시고 심지어 지난 한 달 간의 혼란기에 동상을 세우자고 했던 백선엽 그 사람은 동족을 살상한 일본군, 만주군이었다"며 "그런 자를 존경하는 선배 또는 군인의 본받을 대상으로 여기는 육사가 어떻게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있나. 선열이 아주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반납에 함께한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육사의 흉상 철거에 대해 "육군사관학교 역사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독립운동의 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세계 모든 나라,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는 모든 나라는 다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의 영웅을 자신들의 뿌리로 인정을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군은 참 희한하게도 독립전쟁의 영웅들을 자신들의 역사에서 굳이 지워버리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관장은 "독립운동과 육군사관학교는 무관하다고 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을 후손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운동가들에게 준 명예 졸업증서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제발 육군사관학교, 육군, 국방부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마지막 드리는 고언"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졸업증서 반납에 육사 관계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육사는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육사 교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독립운동가의 명예 졸업증서만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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