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효심'으로 버틴 3부 리거 '이재천'

홍성완 기자 2023. 9. 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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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병간호 위해 공무원 꿈 포기
3부 리그 우승 발판 삼아 ‘역전’ 노린다
프로당구 선수 이재천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모든 스포츠에는 희로애락(喜怒愛樂)이 있다. 승부의 갈림길에서 발산되는 희열과 아쉬움, 그 과정마다 켜켜이 쌓이는 애증과 즐거움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근 프로당구(PBA) 3부리그(챌린지리그)에서 우승한 이재천(44) 선수의 당구 인생도 희로애락이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 학업에 대한 아쉬움, 후회 없이 보내드린 부모님의 마지막 길, 스트레스성 질병을 극복하고 묵묵히 당구의 정점을 향해 도전하는 삶까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길목마다 그를 버티게 한 반석은 당구였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항상 꿈꾸는 이재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충무로에 있는 '패한자는 카운터로' 당구장을 찾았다.

◆ 곤두박질친 성적에 멀리한 당구
    부모 병시중 위해 당구장 '알바'

PBA는 LPBA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변이 넓은 편이다. 그런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선수층이 두꺼워 3부 리그까지 운영되고 있다. 아마추어 고수들이 즐비한 우리나라에서 PBA 도전은 다른 어떤 종목보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2부 리그와 3부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기약 없는 도전에 쉽사리 지칠 수 있다. 그래도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말의 가능성을 위해 하루하루 도전의 길을 묵묵히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이재천은 지난 8월 열린 '2023-24 Helix PBA 챌린지투어(3부 리그) 1차전'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려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9월에 열린 '에스와이 PBA 챔피언십'에서 3부리그 출신으로 건설업을 하는 박기호 선수가 4강 돌풍을 일으킨 이후 '언더독'의 반란에 팬들은 환호했다. 이재천도 언제든지 반란을 주도할 후보로 떠오른 셈이다.

으레 그렇듯 그는 친구들과 재미 삼아 당구장을 찾으면서 큐를 잡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 따라 당구장을 찾은 게 어떻게 보면 제 당구 인생의 시작이었어요. 그때는 당구선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그냥 취미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구라는 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잖아요. 처음에는 4구를 쳤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수지가 300점을 넘어서기 시작했어요."

이재천이 접한 당구의 세계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당구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면서 결국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구를 치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어요. 공부도 안 하고 당구장만 들락거리다 보니 부모님께서 실망을 많이 하셨죠. 성인이 되고 나서 스스로 자책을 많이 했습니다. 학업을 소홀히 했던 자신을 돌아볼수록 당구 자체에 대한 감정이 좋진 않았어요. 괜히 배웠다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죠."

프로당구 선수 이재천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후회가 밀려들면서 그는 당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취미로 가끔 즐기긴 했지만 이전처럼 당구장을 자주 찾지 않았다. 대학교에 진학한 후 취업을 준비했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고심 끝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행정학과를 나오고 막연하게 공무원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어요. 혈액암을 앓으셨거든요. 제가 3남 2녀 중 막낸데 위로는 모두 결혼한 상황이라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했죠. 물론 공무원 시험 준비는 접었고요. 당장 뭐라도 해야 할 때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어머니 수발을 위한 수단으로 당구와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셈이다. 이때부터 이재천은 본격적으로 3쿠션에 입문했다. 3쿠션을 치는 고객들과 게임을 쳐주려는 방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병에 걸렸고 이재천은 다시 병간호를 도맡았다. 그는 2016년까지 7년 동안 몸담았던 당구장 일을 그만두면서 공무원 시험을 다시 준비했다. 

"연로하신 사장님이 힘들어서 당구장을 접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당시에 매너리즘에 빠진 상황이었거든요. 더 늦기 전에 포기했던 공무원 시험에 다시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면서 노량진에 학원을 등록하고 1~2년 정도 준비를 했죠,"

◆ 스트레스로 인한 가려움증 재발
    양친 잃은 슬픔 딛고 2부 승격

부모님의 병시중을 도맡았던 그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도 그 즈음이다. 시험 준비에 대한 조급증이 스트레스를 유발해 지병을 자극한 것이다.

"제가 전부터 앓고 있던 피부 알레르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이게 계속 심해지더라고요. 밤에 긁느라 잠을 못 자고 학원이나 도서관에서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죠. 그로 인해 스트레스와 가려움증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돼 심신이 피폐해지는 상황이 이어지니까 스트레스나 풀 겸해서 당구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구 칠 때는 알레르기가 문제가 되질 않더라고요. 앉아 있을 때 긁다가 큐를 잡으면 되니까요. 당구에 집중하다 보니 알레르기도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핸디 24점을 놓고 다시 시작한 3쿠션은 1년도 안 돼 핸디가 30점까지 올라갔다. 그 무렵 PBA 출범 소식을 들은 이재천은 도전 의식을 불태웠다. 그리고 경험 삼아 선발전에 나갔지만 역시 프로의 벽은 높다는 것을 실감했다.

2020년 PBA는 2년차를 맞이하면서 리그 운영을 3부 리그까지 확대한다. 이재천에게 진입장벽은 좀 더 낮아졌다.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 비용을 보태야 해서 당구장에서 일을 다시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근무하는 곳이 '패한자는 카운터로' 당구장입니다. 그리고 사장님의 배려 덕분에 2020년 3부리그 선발전에서 합격할 수 있었죠. 그런데 유독 그해에 많은 일이 있었어요. 30년 지기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2주 만에 아버지도 돌아가셨어요. 여러 가지로 멘탈이 흔들리다 보니까 연습에 제대로 매진하질 못했죠."

프로당구 선수 이재천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그래도 이재천은 역경을 딛고 2부 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심신이 지쳤고 경기력도 좋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3부 리그로 다시 강등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제가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운 좋게 2부 리그까지 올라가니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던 것 같아요. 어영부영하다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3부리그로 다시 강등되더라고요."

◆ 자신을 돌아보게 한 북한산 등반
    '비움'을 통해 '채움' 깨닫는 계기

결과적으로 3부 리그로 강등된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전환점이 됐다. 새로운 다짐을 위해 등산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비우는 시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미흡한 부분들을 극복하려고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전 산에 오르는 걸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성적이 계속 안 나와 고민하던 차에 아는 동생의 권유로 북한산 등반에 나섰죠. 산에 오르면서 '이런 산도 한 번에 오를 수 없는 법인데, 어떤 일이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번은 등산 중 어깨를 다쳐 연습을 못했는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활용했더니 이후에 마음이 더 편해지더라고요."

'비움'의 시간은 곧 '채움'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참여한 '2023-2024 챌린지투어' 개막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8강전 조진우 선수와의 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저력을 보여줬다.

"심적으로 안정되고 뭔가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챌린지리그로 다시 강등되고 나서는 '더 떨어질 곳도 없으니 오르기만 하면 된다'라는 마음이었거든요. 그 덕분인지 이번 대회 가장 위기였던 8강전에서 첫 세트를 내주고 2세트에서 10 대 1까지 지고 있었는데, 딱히 조급한 마음은 안 들고 한 번만 더 기회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기회가 몇 번 더 왔고, 그걸 살리면서 역전으로 이어졌죠."

2부 리그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재천은 들뜬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마음으로 다음 경기만을 생각했다.

"내년에 2부 리그에서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크게 변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이제 겨우 3부 리그에서 우승했는데 설레발 치고 싶지도 않고요. 제 일에 충실하면서 그냥 초심을 잃지 않고 남은 시즌에서도 최대한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는 마음뿐입니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서 한 번 더 우승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프로당구 선수 이재천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시련을 딛고 일어난 이재천에게 더는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챌린지리그를 넘어 1부 리그까지 한 걸음씩 전진하기 위한 그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좋은 일만 있길 바라고 있어요. 안 좋은 일들은 다 지나갔다고 생각해요. 그 힘든 시간을 당구 덕분에 이겨냈으니, 이제는 당구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당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당구 산업 자체가 커져야 한다는 바람도 있어요. 그래서 누구보다 당구의 저변이 넓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마음의 스승은 서현민 선수"

이재천에게 마음의 스승은 서현민(웰컴저축은행) 선수를 꼽을 수 있다. 틈틈이 서현민으로부터 많은 기술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사는 곳이 서울 우이동 4·19탑 인근인데 근처에 서현민 프로님이 하시는 당구 클럽에 가끔 들러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전에 서현민 선수가 '당객열전' 인터뷰를 할 때 사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웃음). 서 프로님이 정말 감사한 게 갈 때마다 한두 경기 어울려 주시면서 고급 기술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세요. 그런 대단한 선수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당구장 사장님하고 사장님 동생이자 연맹 심판을 지낸 류은지 매니저님께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 위해서라도 꾸준히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프로당구 선수 이재천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seongwan62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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