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의 ‘오염수 발언’ 과 조진웅의 ‘홍범도 발언’…그리고 권력의 맹공[위근우의 리플레이]

위근우 칼럼니스트 2023. 9. 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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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빈약한 권력의 언어에 생채기를 내다
자우림의 김윤아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사태를 두고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적은 이후 보수 유튜버나 자칭 논객들에게 심한 마타도어를 당했다.

한없이 낮은 곳에서만 작렬하는 분노 너의 분노. 자우림의 곡 ‘狂犬時代’ 가사 일부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에게 청취를 권한다. 보수 성향 문화예술인 단체인 문화자유행동 창립총회에 참석한 김기현은 “최근에 어떤 밴드 멤버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후 ‘지옥이 생각난다’고 해서 ‘개념 연예인’이라고 하는데,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라고 발언했다. 자우림의 보컬리스트 김윤아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사태를 영화적 디스토피아에 빗대며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적은 걸 노린 비난이다.

여당 대표의 인신공격성 발언 이후
일제히 김윤아 때리기 나선 보수진영
조진웅도 ‘역사 왜곡’에 소신 발언

‘자유 타령’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
권력자들에게 ‘광견시대’ 듣길 권한다
“낮은 곳에서만 작렬하는 너의 분노~”

지옥에 대한 비유 이후 김윤아는 수많은 보수 유튜버나 자칭 논객들에게 심한 마타도어를 당했다. 오염수에 의한 생태계 파괴를 우려한 게 그 정도로 비난받을 일이냐는 걸 차치하더라도, 유튜버들의 말과 여당 대표의 말의 무게와 책임은 다르다. 김윤아가 오염수 방류에 대해 현 한국 정부와 여당의 책임을 적시해 물었다 해도 당대표가 직접 나설 일인지 의문이지만, 정작 그는 함께 사는 지구를 걱정하는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일본 정부를 비판했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염수에 대한 우려가 ‘1+1=100’이라 하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실은 이 수식이 1+1인지 1+2인지 1×99인지 아직 확신하기 어려운 것에 가깝다. 사안의 비가역성에 대한 70%가 넘는 국민들의 걱정과 부정적 반응에도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외교적으로 유감 발언 하나 없던 정권의 당대표가, 본인들도 아닌 일본을 비판한 가수를 콕 집어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모습에 앞서의 가사를 다시 들려줄 수밖에 없다. 한없이 낮은 곳에서만 작렬하는 분노 너의 분노.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만 35번이나 말했던 대통령의 당에서 정작 한 명의 가수이자 시민에게서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모순을 꼬집기란 어렵지 않다. 별 의미가 없을 뿐.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말하자면 ‘누칼협’의 자유다. 위험한 작업을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120시간 일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수산물 먹지 말라고(혹은 먹으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누구도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말라고 칼 들고 협박한 적 없으니 충분히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의미만큼의 자유. 그러니 같은 행사에서 김기현이 천연덕스럽게 배우 김규리의 과거 광우병 소고기 비판 발언을 비꼴 수 있었을 게다. 이명박 정권 시절,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해 그걸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던 김규리의 당시 발언이 레토릭으로서 과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당시 연령 제한 없는 소고기 수입의 문제는 과학적 차원에서도 외교적 차원에서도 비판적 논의가 필요했으며 결국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김규리는 정부에 비협조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분류되고 국정원 댓글부대의 악플에 시달렸다. 본인들의 집권기에 부당한 배제와 불이익을 받았지만 그래도 국민의힘은 떳떳하다. 누구도 김규리에게 더는 작품 활동을 하지 말라고 칼을 들고 협박한 적은 없으므로. 그러니 김윤아와 김규리를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라 칭하는 김기현의 발언은 의도치 않게 스스로에 대한 자기고백이 된다. 자유라는 ‘개념’을 자기 멋대로 오용하고 아직 논의가 종결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우려를 싸잡아 괴담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하는 이들과 개념의 있고 없음에 대해 소통하고 합의할 수는 없다. 첩보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말처럼 “언어가 분명치 않으면 진실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력이 언어를 사유화할수록 정치적 쟁점에 대한 발언의 위험 부담은 커진다. 소위 연예인의 소신 발언도 마찬가지다. 지난 문재인 정권 때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몇몇 연예인의 비판적 발언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노력과 성취를 생각하면 엄혹하거나 엉뚱한 말들이라 논란도 있었지만 대충 언론에 의해 ‘일침’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져 넘어갔다. 반면 김윤아는 현 정부에 대한 직접적 언급 없이도 수구 세력의 전방위적인 공격과 여당 대표의 비난에 노출됐다.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 합리적 의심이 아닌 괴담, 외교적 무능이 아닌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으로 언어를 변용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의 통치술에 반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투명하지 않으며 언어를 매개로 구성된다. 반민주적인 권력일수록 빈약한 어휘를 사용하는 건 그래서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 타령은 자유라는 천부적 권리에 대한 강조라기보다는 차라리 어휘력의 한계에 가까운데, 단순하고 한정적인 어휘로 세계를 구성할수록 정치적 논의의 다양한 쟁점과 맥락은 휘발된다. 당연히 이에 대한 저항에도 언어가 필요하다. 시민 하나하나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좀 더 구조화된 담론으로 응집할 언론과 지식인의 언어가 필요하며, 권력의 빈곤한 어휘에 맞서 풍부한 어휘와 참신한 조합으로 세계에 대한 여러 관점을 형성해줄 예술가의 언어가 필요하다. 오염수에 대한 김윤아의 발언은 단순한 정념의 발산과 다른 묵시록적인 무게감으로 울림을 남겼다. 즉 그는 시민에게 보장된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행사한 것뿐 아니라, 예술가로서 할 일을 한 것이기도 하다.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최근, 또 다른 이슈에서의 소신 발언으로 화제가 된 조진웅의 사례가 인상적인 것도 그래서다.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에 국민 특사 자격으로 참여했던 그는 최근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고 더 나아가 홍범도함 이름 변경까지 논의되는 것에 대해 “이 상황은 정상 범주에서 논리 준함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내 스스로가 이 질문에 답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처참하다”고 뉴스토마토 측에 밝혔다. 이 발언이 흥미로운 건, 그저 정부가 주도하는 사안에 대해 용기 있게 반대 의견을 내서만은 아니다. 국방부는 마치 홍범도에게 독립운동가로서의 명과 공산주의자로서의 암이 있는 것처럼 프레임을 구성했다. 이런 구도에서 홍범도에 대한 입장이란 서로 다를 수 있는 일이 된다. 하지만 이미 국방부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충분히 반박했듯, 레닌 시절 소련의 지원을 받아 항일운동을 했던 홍범도를 주적으로서의 북한 공산주의와 연결하는 건 그냥 역사 왜곡이다. 그러니 질문에 대한 개인의 입장을 밝히기 이전에 이 질문의 전제 자체가 조진웅의 말대로 ‘정상 범주에서 논리 준함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걸 지적하지 않고 소신만 밝혀봤자 언어를 교묘히 왜곡한 사기에 말려들 뿐이다.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에 국민 특사 자격으로 참여했던 배우 조진웅은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정상 범주에서 논리 준함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이런 이유로 김윤아와 조진웅의 발언에 대해 소신 발언이라 칭하는 건 오히려 그 발언의 의미와 효용을 가치절하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발언이 중요한 건 단지 주저하지 않고 소신을 밝혀서가 아니라, 권력의 언어에 포섭되지 않는 자신들의 언어를 꽤 성공적으로 발화했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발언이 화제나 논란이 되는 건 보통 그 이름값 때문이지만, 이 둘의 말은 이름값을 빌어 현재의 정치적 담론에 유의미한 균열을 내고 기입되기에 여타의 연예인 소신 발언과 구분될 필요가 있다. 같은 이유로 의견 제시의 자유를 인정하는 걸 넘어 시민사회의 연대와 지지 역시 필요하다. 김기현의 개념 없는 연예인 발언에서 핵심은 연예인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물론 그 목적도 중요하겠지만) 개념의 통제이기 때문이다. 자우림 노래 ‘PEEP SHOW’의 다음 가사처럼. 모두를 속이는 비결은 뭘까, 진실은 무얼까, 어딘가 이상한 단어와 문장을 봐.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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