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정치는 주사위 놀이가 아니라 복잡한 체스다"
앤서니 에버릿 (1940~ )
"내가 발견한 로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내가 남기는 로마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이다. 그는 실제로 대규모 도시개발을 일으켜 흙벽돌로 된 로마를 대리석 도시로 만든 인물이다.
이렇듯 아우구스투스는 로마를 만들었지만 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역사 서술이라는 게 워낙 드라마틱한 걸 좋아하다 보니 주연배우가 될 만한 사연과 스타성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게 마련이다.
영국의 로마사 전문가인 앤서니 에버릿은 "로마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아우구스투스 중심으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둘의 삶은 너무나 달랐다. 카이사르는 눈부신 재능과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지만 황제가 되지는 못했다. 전제국가를 세우려다 반대파에게 살해당한 한 명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로마를 통합하고 초대 황제가 됐다. 카이사르가 이름을 남겼다면 아우구스투스는 로마를 남긴 셈이다.
연극광이었던 아우구스투스는 필요에 따라 자신을 개조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가난한 시골 출신의 병약한 소년이었다. 그는 타고난 겁쟁이였지만 노력해서 용기 있는 인물이 됐으며, 잔인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지만, 권력을 잡은 뒤에는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거듭났다. 타고난 명장은 아니었으나 끈기와 철두철미한 계획성으로 전쟁에서 승리했고, 역사라는 무대의 승리자가 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양아버지 카이사르의 죽음을 보며 '살아 있어야만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다. 그는 암살자 브루투스, 카이사르의 죽음을 정당화하면서 권력을 장악한 안토니우스 그리고 그의 애인 클레오파트라를 차례차례 제거하면서 제국을 장악한다.
카이사르가 정치를 단순한 주사위 놀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우구스투스는 변화무쌍한 체스 놀이라고 봤다.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식의 운명적인 대담함을 내세웠다면 아우구스투스는 계획적인 주도면밀함으로 승부했다. 그는 극적인 승리 대신 계산된 승리의 사다리를 묵묵히 한 계단씩 밟아 올라섰다. 아우구스투스는 어제의 적도 필요하다면 오늘의 동료로 삼았고, 하층민에게 전쟁의 지휘권을 넘길 만큼 실용적 선택을 했다. 계획이나 질서를 위해서라면 가족까지 버릴 정도로 냉정했으며, 정치적 시도를 할 때는 자신의 죽음까지 시나리오에 넣어놓을 정도로 치밀했다.
하지만 황제가 된 이후에는 인자한 리더가 됐다. 권력의 일부를 원로원과 민중에게 돌려주었고, 신분 질서를 정비해 혼란을 종식했다. 그가 통치했던 41년을 '로마의 평화시대'라고 부른다.
에버릿은 "연극 같은 정치술을 보여준 아우구스투스야말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정치가였다"고 말한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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