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부는 ‘생을 기부’하는 것”…선생-학생 연결고리 치유 계기로[MZ는 생기부 힐링 중]
생기부 열풍, 신뢰회복 계기 주목
[헤럴드경제=사건팀 박지영·박지영 기자] # “종일 잠만 자던 친구였어요. 수업을 시작해도 깨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놀던 학생이었죠. 상담을 해보니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일부러 말 한 마디 더 걸고, 운동장을 같이 걸으면서 힘든 점이 무엇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묻기도 했죠. 그러다가 체육대회 때 피구대회에 출전했는데 엄청 잘하는 거예요. ‘선생님, 피구가 너무 재밌어요’라고 한 마디한 걸 생활기록부에 기재해줬죠. 체육에 흥미가 있다는 걸 알고 체육대학에 진학해보자고 제안했고, 결국 수시로 체육대학에 갔어요. 마음이 너무 짠했죠.”(예술고등학교 교사 조모(50) 씨)
MZ세대를 중심으로 학교 생활기록부(생기부) 열람 열풍이 불면서 학창 시절 선생님의 노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생기부에 적힌 자상한 관찰을 보면서 사회인이 된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숨은 노력을 깨닫고 있다. 몇 달째 지속되는 ‘교권 추락 사태’로 학교 안팎이 학생·학부모와 교사 간 대립의 장처럼 비치는 가운데 생기부 열풍이 학교 내 신뢰회복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생기부의 역사는 한국 교육의 역사다. 1955년 문교부 훈령 제10호가 출발점이다. 이후 수십 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됐다. 생기부에 단순 교육과정 기록을 넘어서는 전인적 학생 관찰, 상위 학급 진학 문서 등 다양한 역할이 부여되면서 교사들이 생기부 작성을 하면서 느끼는 부담도 상당하다. 매 학기 찾아오는 생기부 작성을 ‘숙제’처럼 여길 법도 하지만 학생 개인에 대한 애정을 담아 정성을 쏟는 교사가 대부분이다.
고등학교 교사 박모(38) 씨는 “생기부는 생을 기부하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특성을 잘 드러나게 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하고, 밤낮 시간을 들여 생기부를 쓰는 데 힘을 쏟는다는 의미다. 교사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한 달, 길게는 한 학기 내내 학생들을 관찰한 후 적는다. 작성 자체도 일이지만 각 학생의 특성이 드러나도록 활동을 준비하고 시행해야 한다. 학기 말 배부되는 생기부에는 초·중·고 학교급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 수상 경력, 교과학습 발달 상황 등이 담긴다. ‘수우미양가’로 대표되는 성적과 종합 평가만 담기던 과거와 다르다. 담임교사만의 일도 아니다. 교과 담당교사, 동아리 담당교사 등 학생과 만나는 모든 교사가 생기부를 입력해야 한다. 담임교사는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과 자율활동·봉사활동·진로활동을, 교과 담당교사는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동아리 담당교사는 동아리활동 특기 사항을 입력하는 식이다.
조 교사는 “생기부를 작성하기 위해 방학 전부터 준비를 해서 3차 점검을 받는다”며 “생기부를 쓰기 위해 마감 끝에는 밤을 새우다시피해서 작성하기도 한다”고 했다. 중학교 교사인 안모(30) 씨는 “한꺼번에 쓰기 어렵기 때문에 특이 사항이 생길 때마다 누가(累加) 기록하고 있다”며 “12월이 되면 하루에 3명은 꼭 쓴다는 각오를 가지고 정성을 들여서 쓴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생기부를 작성할 때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씁쓸함도 있다. 긍정적인 내용만 적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져서다. 실제 교육부의 2023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에는 단점을 입력하는 경우 변화 가능성을 함께 입력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B(35) 씨는 “심한 경우에는 ‘노력을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기부에 기재해도 학부모 민원이 들어온다”며 “부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이도록 기재하라는 지침인데 솔직하게 적을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중학교 교사 강주호(37) 씨 또한 “교육청에서는 ‘나쁜 행동이 있었을 때 수첩에 적는 등 증거를 확실히 남겨 놓고 적어라’고 한다”며 “학생의 장단점을 기록하면 이후 지도교사에게도 도움이 되는 면이 있는데 학부모들의 항의가 들어올까 봐 10년 동안 학생의 고쳐야 할 점은 기재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생기부를 다시 꺼내보는 유행이 교육 현장 정상화와 교권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믿음은 쌍방적인 부분이라 생기부를 열람하는 활동을 통해 MZ세대는 물론 사회 전체가 선생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된다”며 “선생님들의 노고를 인정받으면 교사와 학생 간 신뢰회복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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