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에 김치국물 흐르는데, 한국인 아니라 할 수 있나요[다른 삶]
나는 한국 사람인 동시에 캐나다 사람이다.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법적으로는 캐나다 시민권자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곳에서도 ‘코리안-캐나디안’이라 불린다.
캐나다에서 태어나지 않은 외국 사람이 이곳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캐나다 영주권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주권자로 살다가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영주권자가 시민권자로 지위 혹은 신분을 바꾸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주권자로서 5년 중 3년을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세금 신고를 하고, 범죄와 무관하고, 시민권 시험을 통과하면 된다(17세 이하, 60세 이상은 시험 면제). 시민권 시험도 평범한 한국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수준이 아니다.
다른 나라 국적의 캐나다 영주권자라고 해서 이곳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다. 국적이 캐나다가 아니니 참정권만 갖지 못할 뿐이다. 캐나다에 살러 온 사람이 영주권자로 살든, 시민권자가 되든 그것은 각자 알아서 선택하는 일이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나라 사람 중에는 이중국적자로 사는 사람도 많다.
한국 국적의 캐나다 영주권자로 살아도 되는 내가 굳이 캐나다 시민권자가 된 것은 두 가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2008년 이전만 해도 한국 국민이 미국을 가려면 방문 비자를 받아야 했다. 캐나다 이민 초기 ‘자영업을 준비하는 사람’ 처지가 되고 보니, 한국 국적자로서 미국 비자를 재발급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직장은 물론 변변한 벌이도 없는 한국 사람에게 미국 정부는 방문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반수연 작가 작품 지원 철회 소식에…마치 내가 ‘고국서 쫓겨난 듯’ 충격
한국서 등단하고 한글로 작품 썼는데 ‘국적’ 이유로 푸대접에 수모 안겨
이국에서 안전하게 살려고 시민권 취득…20년 지나도 ‘뼛속까지 한국인’
글은 국적 아닌 정서로 쓰는 것…오히려 한국 문학 풍성해질 수 있는 길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 살러 온 나로서는 뉴욕 사는 누님과 절친한 친구라도 찾아가서 위안을 얻고 싶었다. 만료된 미국 비자를 갱신할 방법이 없으니 뉴욕 방문은 불가능했다. 당시로서는 내가 미국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캐나다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시민권 시험을 보았고 캐나다 여권을 받았다.
캐나다 시민권을 갖게 된 첫 번째 이유가 현실적인 것이었다면, 두 번째 이유는 다소 감정적인 것이었다. 이민을 온 이듬해, 내 일터 주변에서 준공무원쯤 되는 사람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우겼다. 다툼이 끝나고 1시간 후 경찰이 나를 찾아왔다. 신고를 받았다고 했다. 나와 다툰 사람이 내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경찰은 나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고, 내 신상명세와 내가 하는 말들을 수첩에 꼼꼼하게 적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런 종류의 누명을 쓰고 처벌이라도 받으면 추방될 수도 있겠다 하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두려움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초기 이민자로서 경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여간 신경 거슬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 직후 나는 ‘신고자가 상습적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그의 동료로부터 전해들었다. 그 일과 관련해 이후 경찰한테 따로 연락받은 일은 없었다. 경찰은 신고를 받았으니 일단 나와서 조사만 한 것 같았다.
시민권을 취득할 자격이 되었을 때 내가 신청을 별로 주저하지 않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짧게나마 그런 공포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시민권자가 되면 내 신분이 조금 더 안전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또한 ‘뇌피셜’에 불과한 것이지만, 기댈 곳 하나 없는 낯선 땅이어서 그런지 지푸라기라도 하나 잡고 싶었다.
모르긴 해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캐나다 국적자가 된 것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시민권자로 사는 게 심리적으로 좀 더 안정적일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모국과 등진다거나 하는 식의 ‘비장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서 보지 못했다. 캐나다 시민권자가 된다는 것은 편의를 위해 문서상의 신분을 바꾸는 가벼운 일일 뿐이다. 그런 외피와 형식적인 것을 아무리 바꾼다 한들 한국인 DNA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캐나다 시민권자가 된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민 1세인 내가 온전한 캐나다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우선 생활하는 것부터 그렇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돈벌이’와 관련해서만 접촉할 뿐이다. 내가 만나 교류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토론토의 한국인들이다. 은행에 가도 한국 직원을 먼저 찾고, 변호사도 회계사도 한국 사람을 찾는다. 가정의도, 전문의도, 치과의사도 말과 정서가 통하는 한국 사람을 선호한다. 한국 전문가를 만나기가 여의치 않을 때라야 비로소 외국 사람을 찾게 된다.
교회나 동창회 같은 친목 모임에 나가도 한국 사람들끼리 어울리니,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영어 쓸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한국 것이 우선이다. 때로는 내가 사는 이곳이 외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내가 한국인으로 사는 이곳은 ‘작은 한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시민권자로서 이곳에서 투표하고 외국 사람들과 필요에 따라 접촉은 하되, 생업을 제외한 내 생활의 거의 전부가 토론토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사는 만큼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외국 사람들이 나를 편하게 부르도록 하려고 만든 이름이다. 나는 영어 이름을 지을 때 가수 이선희의 노래 <J에게>가 떠올라 그냥 ‘제이’라고 정했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 이름은 새로 얻게 된 국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영어 이름이 있다고 내 본래 이름이 사라지지 않듯이, 국적을 변경했다고 해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바뀔 리가 없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영어와 영어 이름을 쓰고, 국적이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라고 해도 나는 ‘한국’ ‘한국 사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산다 한들 한국과 한국 문화의 테두리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캐나다 시민권자로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나는 한글로 별 어려움 없이 이렇게 글을 쓰지만 영어로는 수월하게 쓸 수가 없다. 장강명의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살러 온 사람이라 해도, 그래서 아무리 한국 사람이 아니고 싶다 한들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한국 사람은 어디에서 살든 밥과 김치를 먹는다.
법적으로 보자면 캐나다 사람인 내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며 ‘골수 한국인’임을 다시금 확인하고 강조하는 까닭이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살면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반수연씨의 산문집이 ‘문학나눔’에 선정되었다가 철회되었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기 때문이다. 반씨는 1990년대에 캐나다에 살러 온 이후 한국의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한국 소설가’로 등단(나는 한국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재외동포 작가를 반씨 이외에 본 적이 없다)했고, 재외동포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소설집 <통영>(강 2021)과 산문집 <나는 바다를 닮아서>(교유서가 2022)를 한국에서 잇따라 펴냈다. 이민자로서 살기가 바쁘고 고단해서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작품집을 펴낸, 말 그대로 ‘늦깎이’이다.
그의 책 두 권은 모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문학나눔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우수문학도서를 선정·보급’한다는 취지로 연간 520종을 선정해 지원(도서 정가 90% 금액으로 1종당 850만원 이내의 도서 구입)하는 제도이니, 심사만 통과한다면 반씨의 책에서 문제 삼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의 산문집 <나는 바다를 닮아서>에 대한 문학나눔 도서 선정을 철회했다. 위원회가 문제 삼은 부분은 작가의 법적 신분, 곧 국적이었다. 선정 후 1년이 지난 다음에야 새삼 문제가 된 이유는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원의 내용은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에게 왜 지원을 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듣고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캐나다 시민권을 신청했을 때의 심정이 이와 비슷한 것이었다. ‘내가 억울하게 캐나다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예전의 그 생각은 근거 없는 공포심에 불과했으나 이번에는 실제로 내가 한국에서 쫓겨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등단한 한국인 소설가가 한글로 글을 써서 한국에서 출판한 책을 공공기관이 국적을 문제 삼아 내쳤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람인데, 캐나다 영주권자면 괜찮고 시민권자는 안 된다는 얘기인 것 같다.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한글로 글을 쓰고 발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뼛속까지 한국인’임을 인증하는 것이다. 사람은 국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서와 감정으로 글을 쓴다. 외국인 신분으로, 외국에서 살면서, 한글로 예술성 높은 글을 발표한다면 그것은 장려되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한국 문화(문학)를 풍성하게 하고 그 외연을 넓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주류인 언어 환경 속에서 한국어 감수성을 유지하며 당대의 한국 독자들과 만나고 호평받는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과 다르고 일반 한국인에게는 낯선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면 칭찬하고 환영을 해야 마땅한데, 그 반대로 푸대접하고 수모까지 안기는 아주 이상한 경우를 본다. 국적이 우리가 가진 정서나 감정, 소속감이나 유대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일까? 형식에 불과한 그까짓 국적이 뭐라고. 저런 논리대로라면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투수 류현진을 나 같은 캐나다 사람이 태극기 흔들어가며 열심히 응원하는 것은 참 기이한 일로 보일 터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최근 읽은 책에서 다음의 내용이 눈에 쏙 들어왔다.
‘1955년 저우언라이(중국 초대 국무원 총리)가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국적이 어떻든 친구는 친구이고 형제는 형제이다”라고 말하면서 현지 국적 취득을 권고했다. (…) 동남아에서 서구까지 이주하면서 화교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남겼고 지금도 그 맥은 이어지고 있다.’(윤태옥 <변방의 인문학> 280쪽)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7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 등 단행본 6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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