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게 필요한 건 단식이 아니라 국민 공감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시사저널=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은 정국의 방향타를 어디로 돌려놓을까. 역대 많은 정치인이 정치적 고비의 순간에 단식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이 대표의 단식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대표는 8월31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와중에 대북 송금 관련 수원지방검찰청의 소환조사를 받았는데, 9일 1차 소환과 관련해 검찰과 이 대표는 조사 내용을 두고 격렬하게 대치하는 국면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의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충분히 신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지만 추가 소환까지 요구하는 검찰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검찰은 시종일관 '시간끌기식' 질문이나 기록을 남기기 위한 질문 등으로 시간을 지연했다"고 했다. 반면에 수원지검은 "이 대표는 조사 내내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한 채 진술서로 갈음한다거나, 질문과 무관한 반복적이고 장황한 답변, 말꼬리 잡기 답변으로 일관하는 등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조사에 차질을 빚었다"고 밝혔다. 신경전 끝에 진행된 9월12일의 2차 소환은 이 대표의 몸 상태로 짧은 시간 진행되었지만 양측의 대치 상황은 그대로 이어졌다. 요약하면 이 대표는 단식으로 윤 대통령과 대결하고 있고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로 검찰과 각을 세우고 있다.
그럼 단식을 통해 이 대표가 얻을 정치적인 효과는 있을까. 일단 정치적 단식 결정을 통한 내부 결속의 효과는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9월5~7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물어보았다. 국민의힘은 34%로 3주째 같은 수치로 나왔다. 민주당은 직전 조사에서 27%였는데 무려 7%포인트 올라 국민의힘과 같은 34%로 나타났다. 특별히 민주당에 호재로 볼 수 없는 기간 동안 지지율이 올라간 것을 보면 이 대표의 단식에 따른 지지층의 결집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가 지사직을 역임했던 경기를 포함한 인천·경기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37%였고 국민의힘은 30%였다. 가장 주목되는 지역은 호남인데 직전 조사에서 43%였는데 이번 조사에서 61%로 18%포인트나 껑충 뛰었다(그림①). 확실한 내부 결집 효과로 확인된다.
김영삼·김대중 단식 땐 국민 감동
그렇다면 이 대표의 단식을 통해 민주당에 대한 이미지까지 호감으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일까. 같은 한국갤럽 조사에서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되어야 하는지' 또는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되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현 정부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응답은 37%로 나왔다. 국민의힘 지지율인 34%와 거의 차이 나지 않는다. 현 정부를 견제해야 하다는 답변은 50%로 나왔다. 정권 지원보다 견제 여론이 13%포인트 더 많은 결과다. 그런데 민주당의 지지율은 같은 조사에서 34%로 나타나 '정권 견제' 응답 50%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로 나왔다(그림②). 즉 이 대표의 단식이 내부 결집으로 당 지지율은 끌어올렸지만 근본적인 민주당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수준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다.
단식이라는 최종적인 정치 수단을 야당에 대한 존재감으로 확산시킨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 YS는 야권 지도자 시절이던 1983년 가택 연금에 대한 반발로 무려 23일간 단식을 감행하고 전국적으로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 공감대가 높게 만들어졌고 야당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가 높아지는 분수령으로 작동했다. DJ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대표 단식의 경우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토(반대) 정서는 인정하더라도 당장 왜 민주당 내부의 혁신에 대해 주저하거나 눈감고 있는지 도리어 공격을 당하게 될 공산이 크다. 기대와 달리 지리멸렬했던 김은경 혁신위원회, 송영길 전 대표와 관련된 돈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암호화폐 거래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었다.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엔 역효과
이 대표 개인 영향력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약해지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 즉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전체 결과로 이재명 대표 19%, 한동훈 법무부 장관 12%, 홍준표 대구시장 3%, 이낙연 전 총리 3%, 오세훈 서울시장 2%, 원희룡 국토부 장관 2%, 김동연 경기지사 2%,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2%로 나왔다. 민주당 지지층만 놓고 보면 이 대표가 45%로 민주당 계열 차기 지도자 중에서 월등하게 높았다. 하지만 절반을 넘기지는 못했다. 이 대표가 70% 이상 압도적으로 당선된 당 대표임을 강조하지만 정작 민주당 지지층에서 과반이 안 된다.
여기에 전체 결과를 보더라도 지난해 9월 조사 이후 그래도 20%대 이상의 차기 지도자 조사 결과를 유지했던 이 대표가 이번 조사에서는 10%대로 나왔다(그림③). 전격적인 단식 돌입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는 있었지만 민주당의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혁신되었거나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었는지를 묻는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오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문제는 경제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었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꺾었던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가 내걸었던 슬로건이 바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민생경제와 관련해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 쪽에 주로 책임이 있겠지만 '공룡 정당'으로 평가받는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 역시 책임으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 않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민은 야당의 책임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명분은 역대 성공적인 단식으로 평가받았던 정치인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약한 편이다. 심각하게 건강을 해치는 단식을 일단락하고 건강을 추슬러 검찰의 소환조사에 대응하고 아울러 다수당의 정책 경쟁력을 발휘할 때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과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식이 아니라 민생이어야 하는 이유다. 1983년 군부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은 국민에게 큰 울림이 있었다. 집을 막아선 경찰을 향해 YS는 "내 몸을 가둘 수는 있을지언정 내 마음을 가둘 수는 없다"는 민주화에 대한 열정으로 정치 부활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대표에게 필요한 건 단식이 아니라 국민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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