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간호법 단독입법 없다" 재확인…의료법 개정 연구회 발족
조규홍 "특정 직역의 역할 확대 아닌 의료 전반 다루는 法체계 정비 필요"
올 상반기 '간호법 대란' 이후 대한간호협회와 야권이 법안 재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간호법 단독 입법은 없을 것"이란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정부는 60년간 존속된 의료법이 현재의 의료·돌봄 수요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법 체계를 전반적으로 다듬기 위한 전문가 논의체를 꾸렸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간호·요양, 법조 분야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의료법 체계 연구회'의 첫 회의를 15일 서울 중구 비즈허브서울센터에서 개최했다.
연구회는 초고령사회에 맞는 새로운 의료법 체계 마련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전문가 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발족됐다. 위원장은 이윤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 교수는 간사 역할을 수행하며 연구회 논의와 회의 운영을 지원할 예정이다.
의료 분야에선 △노용균 한림대 의대 교수(가정의학과) △오태윤 강북삼성병원 교수(흉부외과) △이혜진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정의학과), 간호·요양은 △윤주영 서울대 간호대 교수(지역사회간호학)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참여한다.
법률 전문가로는 신권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백경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앞서 1962년 제정된 의료법은 급속한 시대변화에 발맞추기에 너무 낡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원칙적으로 의료행위는 '의료기관 내'에서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 대부분의 규정이 만들어졌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시범사업 진행 중인 비대면진료가 현행법상 '불법'인 이유도 의료법에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의료·요양·돌봄 등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돌봄체계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없는 구조다. 방문진료 등의 허용범위나 준수 기준에 관한 규정도 없다 보니, 의료기관 밖에서의 의료행위가 활성화되기도 어렵다.
또 '무면허 의료행위'는 엄격하게 금지하면서도, 의료행위의 개념이나 구체적 판단기준을 명시하지 않아 판례와 해석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노인이나 장애인 등을 돌보기 위해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행위들도 의료행위로 간주돼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가령 A씨의 경우,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버지가 스스로 가래를 뱉어내지 못해 산소포화도가 낮아지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가래가 찰 때 흡인을 하는 방법을 배워 퇴원했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낮에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주간에는 요양보호사에게 도움을 부탁했지만, '불법 의료행위'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스스로 소변을 볼 수 없는 척수장애인 B씨도 마찬가지다. 보호자는 거동이 불편해져 장기요양 2등급을 받은 그를 요양원에서 돌보고자 했지만, 시설에선 하루에도 수차례 이뤄지는 '자가 도뇨'(기구를 통한 소변 배출)로 입소가 힘들 것 같다고 난색을 표했다.
복지부는 지난 2014년 유권해석을 통해 장애인 활동보조인이 자가도뇨를 도울 수 있다고 밝혔지만, 요양보호사의 행위엔 여전히 불법 딱지가 붙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B씨는 결국 요양병원으로 입원해야 했다.
이밖에 보건의료 업무의 다양화·전문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기술 발달에 따라 직역별 업무가 세분화되고 있으나 현 법체계는 각자의 업무범위를 추상적으로 규정해 현장 갈등과 법적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는 간호법 이슈로 간협이 의사단체 등과 반목한 원인과도 무관하다 볼 수 없다.
정부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국민들이 요구하는 서비스는 다양한 직역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조하는 '원 팀(One Team)'이 되어야만 완성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논의체에 여러 직역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이에 연구회는 현 의료법 체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외사례 등을 기반으로 각 규정별 개선방향을 논의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의료기관 밖에서의 의료서비스 제공 근거 체계화 방안 △의료행위와 각 직역별 업무범위 규정 체계 개선 △의료법과 다른 법률과의 관계설정 방향 등이 안건에 오를 전망이다.
회의는 격주로 열리며, 참여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연구회 차원에서 관계단체 의견 수렴을 병행하고, 필요 시 공청회 등도 개최할 계획이다.
최종적으로는 권고문 형태로 정부에 의료법 체계 개편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초고령사회에 맞는 선진화된 의료·요양·돌봄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특정 직역의 역할 확대만을 반영하는 단편적인 법 제정이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을 다루는 의료법 체계 정비가 우선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우리 의료법 체계 개편의 토대를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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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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