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K-99 재현 현장 가보니... 초전도체 아니라 부도체였다

오지혜 2023. 9.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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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에너지소재양자물성연구실
2가지 방식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  
일정 수준 저항 떨어지긴 했지만 
금속보다 높아... 불순물 영향인 듯 
학계 관심 지속... 묻지마 투자는 금물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 위치한 에너지소재양자물성연구실에서 5일 한국일보에 공개한 LK-99 재현 시료 두 가지. 왼쪽은 기존 퀀텀에너지연구소 논문의 방식대로 합성한 것이고, 오른쪽은 황화구리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오지혜 기자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던 올해 8월, 한국은 때아닌 '초전도체'로 더 달아올랐다.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 'LK-99'를 발견했다는 한 사설 연구소 논문 때문이었다. 사실이라면 수많은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단초가 되기에 과학계는 물론, 대중의 관심이 쏟아졌다.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 '애국가에 연구진 이름을 넣자'는 말까지 나왔고, 덩달아 주식시장까지 들썩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초전도체가 아닐 거란 검증 결과만 줄줄이 나오는 상황. 그렇다면 LK-99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난 5일 재현 실험에 한창이던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 에너지소재양자물성연구실을 찾아갔다.


오리지널도, 불순물 제거한 물질도 저항 매우 커

경희대 에너지소재양자물성연구실에서 실시한 LK-99 재현 실험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 경희대 제공

연구진이 소개한 LK-99 만들기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화학식에 따라 재료를 몽땅 넣고 오래 가열하는 식이었는데, 이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1차 실험에서는 기존 퀀텀에너지연구소 논문의 화학식을 조금 바꿨다. 기존 논문대로라면 황화구리 불순물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산화납, 산화구리, 오산화인 등을 진공 석영관에 담아 난로에 넣고 900도에서 24시간 동안 열처리한다. 그러면 자갈 같은 하나의 덩어리가 나오는데, 이를 갈아 틀에 넣고 600도로 30분간 꾹 누른다. 그러면 10원짜리 동전만 한 'LK-99-1'이 나온다.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 위치한 에너지소재양자물성연구실에서 5일 LK-99 재현실험 현장을 공개했다. 사진은 합성에 사용하는 석영관의 모습. 오지혜 기자

2차 실험은 기존 논문에서 제시한 방식을 따랐다. 산화납, 황산납에 열을 가해 또 다른 황산납(라나카이트)을 만들고, 여기에 인화구리를 섞어 진공 수정관에 넣고 925도에서 24시간 가열한다. 그럼 자갈 같은 '오리지널 LK-99'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기존 논문에서처럼 황화구리 불순물 등이 섞여 있었다.

이제는LK-99-1오리지널 LK-99가 초전도체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차례.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초전도체라면 특정 온도 이하에서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성을 보여야 한다. 자기적 특성도 있다. 물질은 자석을 갖다 대면 약하게 붙거나(상자성) 딱 붙거나(강자성) 밀어내는(반자성) 경우로 나뉘는데, 초전도체는 반자성을 띤다. 초전도체를 자석 위에 두면 붕붕 뜨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두 가지를 분석해 본 결과 모두 초전도체로 보기는 어려웠다. 우선 두 물질 모두 부도체로 분류됐다. 초전도체와 정반대로 저항이 매우 크게 나타난 것이다. 자기적 특성은 LK-99-1오리지널 LK-99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두 가지 다 자연상태에서 작은 상자성만을 띠기는 했는데, LK-99-1는 자기장이 매우 작은 환경에서 반자성을 조금 보였다. LK-99를 검증한 다른 연구기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5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 위치한 에너지연구실에서 LK-99 합성 현장을 한국일보에 공개했다. 위부터 기존 방식대로 합성한 LK-99 재현 시료, 구 모양의 자석, 황화구리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합성한 LK-99 재현 시료. 오지혜 기자

연구를 이끈 이종수 경희대 응용물리학과 교수는 "저항이 일정 정도 쭉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황에 구리를 넣으면서 생긴 황화구리 불순물이 물질 내부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저항이 일반 금속보다 매우 높게 측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LK-99 논문을 보더라도 저항이 0이 아니고, 자기적 특성을 다룬 데이터에 오류가 있어 보이는 등 초전도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LK-99가 초전도체냐 아니냐의 논란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의미다.


LK-99, 더 볼 게 남아 있다

그렇지만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완전히 못 박을 수는 없다. 산소의 양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휙휙 바뀌고, 구리 도핑(물성 변화를 위해 소량의 불순물을 넣는 것)이 마음대로 잘 안 돼서다. 즉 안정적으로 똑같은 LK-99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확실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진은 산소 함량, 구리 도핑 방법을 다양하게 바꿔보며 실험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공개한 상온 초전도체 LK-99. 자석(둥근 물체) 위에서 상당 부분이 공중에 떠 있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제공

물질 자체로도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론 계산에 의하면 LK-99는 강자성을 보일 수도 있다. 이 교수는 "재료로 들어간 납, 인, 구리 등은 자체적으로 반자성을 띠는 물질들인데, 이런 원소들로 이뤄진 물질에서 자성이 발현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라며 "퀀텀에너지연구소나 다른 연구진들의 결과 영상을 보면 시료의 일부는 자석에 붙어 있고 일부는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건 일부가 자석의 성질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요리에 단맛이 나는 재료만을 넣어 섞었는데, 일부에서 짠맛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흥미로운 지점들 때문에 LK-99를 향한 관심은 현재진행형이다. 학계에서는 LK-99 관련 논문이 여전히 나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LK-99의 전자구조를 해석한 해외 연구진의 논문이 미국물리학회(APS)의 게재 승인을 받기도 했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관계자는 "상온 초전도체로 추정되는 LK-99의 전자구조를 해석했다는 내용이고, 공개된 논문 초록으로 봤을 때 LK-99를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작 당사자인 퀀텀에너지연구소 측은 논문 심사 중이라는 입장 발표 이후, 이렇다 할 대응이 없는 상황이다.

의문 해소를 위한 연구가 계속되다 보면, 앞으로 상황이 급변할 여지는 남아 있다. 퀀텀에너지연구소 측이 깜짝 발표 등 행동을 재개할 수도 있다. 다만 이를 바라보고 위험한 주식 투자를 하는 식의 행동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상온 초전도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희망 때문에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 듯하다"면서 "하지만 근거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 등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LK-99, 주목받은 이유는
1911년 첫 발견된 초전도체는 일정 온도 이하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현상(초전도성)을 띠는 물질이다. 저항은 전기 흐름을 방해하는 성질로, 에너지 효율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휴대폰을 오래 쓰면 뜨거워지고 배터리가 빨리 닳는 것도 저항 때문이다. 반면 초전도체는 저항이 0이라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에너지 손실 없는 송·배전 설비, 에너지저장장치 등을 만들 수도 있지만, 초전도성이 영하 200도 이하나 고압 등 극한의 환경에서만 발현돼 활용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일상(상온·상압)에서 초전도성이 발현된다고 주장하는 LK-99에 대한 관심이 컸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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