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인터뷰 의혹’ 수사, 언론 자유 침해로 가나
김만배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허위 인터뷰 의혹’을 두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두 사람이 공모해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등 특정한 의도를 갖고 거짓 인터뷰가 언론에 보도되도록 했는지가 의혹의 골자다. 특히 김씨가 신씨에게 책값 명목으로 건넨 1억6500만원의 실제 성격이 무엇인지가 사법처리 여부를 가를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해당 책은 신 전 위원장이 집필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지도>(이하 <혼맥지도>)로, 혼인관계로 맺어진 언론과 재벌 등 권력층의 가계도를 분석한 내용이다.
검찰은 두 사람의 인터뷰를 보도한 뉴스타파,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다룬 JTBC 등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이들에게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명예훼손의 피해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시민사회에서는 공직자의 도덕성·청렴성 등에 관한 비판·평가를 담은 언론보도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비판 언론 옥죄기’라고 비판한다.
허위 인터뷰? 사적 대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지난 9월 1일 신학림씨의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김만배씨와 신씨가 금품을 대가로 허위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의혹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물증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이어 서울중앙지검은 9월 7일 검사 10여명을 투입해 특별수사팀까지 구성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그 배경을 밝히면서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유력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해 “민의를 왜곡하는 시도”를 함으로써 “헌법상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를 농단한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대선 공작 사건”으로 규정하자 이에 보조를 맞춘 듯한 모습이다.
논란이 된 인터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와 신씨는 2021년 9월 15일 경기 성남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둘은 과거 같은 언론사에서 일했던 선후배 사이다. 신씨는 김씨와의 대화를 녹음했고, 6개월 뒤인 2022년 3월 4일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 등을 뉴스타파에 제보했다. 신씨는 당시 뉴스타파 전문위원이었다. 뉴스타파는 이 대화를 발췌해 20대 대통령선거 사흘 전인 3월 6일에 보도했다.
뉴스타파 보도 내용의 핵심은 윤석열 대통령이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을 지낼 당시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장동 관련 불법 대출 내용을 인지했음에도 수사를 무마한 의혹이 있다는 취지다. 의혹의 근거로 김씨와 신씨의 대화 내용을 제시했다.
검찰은 해당 의혹이 거짓이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김씨와 신씨가 고의로 허위 내용을 인터뷰해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하도록 했다고 의심한다. 대선에 개입하려 한 정황도 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두 사람이 만났을 당시는 대장동 개발 사업을 둘러싼 검찰수사가 윗선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에 따라 김씨가 유력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현 대표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을 우려해 거짓 인터뷰를 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김씨가 이 대표의 당선을 도와 범행을 은폐하고 책임을 축소할 목적으로 상대 후보(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불리한 허위사실 유포를 계획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김씨와 신씨, 그외 관련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면서 사전모의 정황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김씨와 신씨는 의혹을 일축한다. 김씨는 “15~20년 만에 처음 (신씨에게 전화가 왔다)”이라며 “이 사건(대장동)으로 패닉 상태에 있었고, 오랜 지인으로서 위로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사적 대화를 녹음하는 줄도 몰랐다”고도 했다.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에는 실제로 김씨가 “이거 기사 나가면 큰일 난다”, “이 얘기는 죽을 때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신씨도 과거 부고 기사를 통해 김씨의 연락처를 파악해 인터뷰 전날 연락을 취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신씨가 연락을 했다고 주장하는 날은 김씨가 기존 휴대전화를 폐기하고 연락처를 바꾼 시점이어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만난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결정되기 약 두 달 전이어서 대선 개입 의도로 허위 인터뷰를 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뉴스타파 측은 해명하고 있다.
<혼맥지도>, 1억5000만원 가치?
무엇보다 주목되는 부분은 김만배씨와 신학림씨의 금전 관계다. 김씨는 신씨와 만난 이후 1억6500만원을 건넸다. 이 돈은 신씨의 저서 <혼맥지도> 1세트, 총 3권의 구매 대금이라고 두 사람은 주장한다. 책값 1억5000만원에 부가가치세 1500만원을 더한 액수다. 검찰은 그러나 1억6500만원이 허위 인터뷰를 하고 이를 보도한 대가였다고 보고, 돈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계약서에 기재된 매매 일자가 실제 거래일보다 6개월 빠른 점 등을 특히 석연찮게 보고 있다.
김씨와 신씨는 <혼맥지도>가 이 정도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입장이다. 신씨는 “김씨는 언론사에 있는 사람이고, 언론사를 인수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어마어마한 데이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다른 사람에게도 책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신씨는 “책의 모양을 띤 데이터베이스”라며 “이 때문에 1억5000만원 이상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신씨는 10년 이상 권력층의 혼맥과 인맥 등 관계망을 조사·분석해왔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2020년에 발간한 <혼맥지도>다. 책은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다만 내용은 신씨의 과거 인터뷰 내용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2021년 7월 경남 남해의 지역언론인 남해시대와 저서를 주제로 인터뷰를 했다.
신씨는 인터뷰에서 “한국사회 부조리의 뿌리에는 혼맥이 있다”라며 “혼맥을 알지 못하면 부정부패의 고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우리나라 0.1%인 최고위층이 어떻게 혼인관계로 엮여 있는지 가계도만을 정리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신씨는 “나만의 노하우로 검증을 거쳐 제작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1만명의 ‘족벌 클러스터’가 돈, 권력, 명예를 완벽하게 독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자료”라고 부연했다.
책은 조선·중앙·동아일보 사주 일가의 가계도로 시작한다고 매체는 전했다. 신씨는 “언론노조 위원장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족벌신문의 혼맥이 언론 문제의 근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기관이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주들은 이미 혼인관계를 통해 재벌과 한몸이 된 지 오래였다”라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신씨는 후속편을 준비 중이라며 “후속편은 (가계도) 하나하나의 의미와 뒷이야기를 담은 책이 될 것이다. 현재 작업을 지원해줄 후원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 탄압”
검찰은 김씨와 신씨 사이에 금전이 오간 점을 근거로 배임증·수재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두고 수사 중이다. 또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수사팀에는 명예훼손죄에 전문성을 갖춘 검사도 참여했다.
검찰은 지난 9월 14일 김씨와 신씨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한 뉴스타파, 유사한 보도를 한 JTBC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뉴스타파 소속 기자 2명(1명은 전 JTBC 소속)의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뉴스타파 측은 “언론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당일 오전 서울 중구 뉴스타파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무도한 윤석열 정권과 정권을 수호하는 정치검찰이 얼마나 악랄하게 언론을 탄압하는지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날”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뉴스타파가 검찰의 특수활동비 검증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하필 오늘 같은 날을 검찰이 택한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검찰이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적용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 정부 정책을 대상으로 한 공익 목적의 언론보도는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니고서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시민사회에서는 검찰이 언론을 압박하려는 목적으로 명예훼손죄를 꺼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의혹 제기 자체를 형사적으로 처벌하고 이를 빌미로 집권세력이 언론사를 공격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면 언론의 자유는 물론 고위공직자 비위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는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2011년 대검 중수부가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수사할 때 실제 수사 무마가 있었는지부터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논평을 내고 “언론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법원의 영장 발부 남발은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했다. 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인 김성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압수수색을 당하면 업무에 상당한 지장이 있고, 향후 보도에서 자기검열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해당 언론사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PD수첩> 사건 재연?
2008년 MBC <PD수첩> 사건이 연상된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이 언론보도와 관련해 특별수사팀을 꾸린 것도 <PD수첩> 사건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PD수첩>은 2008년 4월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위험성과 정부 협상 과정의 문제점을 다뤘다. 그러자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이 제작에 참여한 PD와 작가 등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1년 만에 제작진 5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2011년 9월 최종 무죄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1월 검찰이 <PD수첩>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권을 남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수사팀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 지휘부는 그러나 수사팀에 기소와 무관하게 강제수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아가 ‘무죄가 나와도 상관없으니 기소하라’는 지시도 수사팀에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팀장이던 임수빈 부장검사는 지휘부와의 마찰을 이유로 결국 사표를 냈다. 당시 대검 형사부가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검토한 문건을 보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요건이 아니라 ‘정국 안정’, ‘야권 반발’, ‘사회 분위기나 여론’ 등을 고려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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