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 적힌 개고기 진열장 건너엔 ‘도살 반대운동’ 트럭

2023. 9.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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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과 불법의 경계’ 모란시장 축산물 거리 가보니…보신탕집 여전히 붐벼
전통 오일장이 열린 9월 4일 모란시장 축산물 거리를 방문객들이 걷고 있다. 시장의 다른 거리에 비해 한산한 편이다.



지난 9월 4일 ‘전통 오일장’이 열린 경기 성남 모란시장 인근. 거리는 지하철역 입구 주변부터 상인과 방문객으로 붐볐다. 사과, 배, 포도 같은 제철 과일부터 치킨, 호떡 등 먹거리까지. 모란역 5번 출구를 나와 시장을 향해 곧장 가다 보면 구경하랴 사람 피하랴 절로 발이 멈춘다.

모란시장 초입에서 방문객을 반기는 건 고소한 기름 냄새다. 참기름, 들기름 등을 파는 기름 특화 거리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100여m 이상 이어진 거리 양옆으로 기름집과 건어물집들이 즐비하다. 멸치를 파는 좌판 앞에는 길게 사람들이 늘어섰다. 주거니 받거니 흥정하는 목청이 구성지다. 거리에 진동하는 고소한 냄새를 즐기며 걷다 보니 도심 한복판에 아직도 이런 전통시장이 성업 중이라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온다.

기름 골목을 돌아나와 다시 대로변으로 걸어가니 모란시장 사거리가 나온다. 전철역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가 상설시장, 건너편으로 가면 매월 끝자리가 4·9일인 날 열리는 전통 오일장이다. 그리고 오일장으로 건너가기 전 오른편으로 모퉁이를 돌면 바로 ‘그곳’이 나온다. 상설시장 끝편에 자리 잡은 축산물 특화 거리다.

전통 오일장이 열린 9월 4일 모란시장 축산물 거리의 한 식육점 냉장고에 개고기가 진열돼 있다(위). 모란시장 축산물 거리를 찾은 손님들이 한 식육점 냉장고에 진열된 개고기를 고르고 있다.



모란시장 ‘개고기’ 판매 여전

축산물 거리에 접어들자 어딘지 모르게 ‘비릿한’ 냄새가 풍겨온다. 후각이 그렇게 예민한 편이 아닌데도 냄새를 알아차리는 게 어렵지 않다. 축산물 거리에는 고기를 파는 식육점과 건강원, 식당 등이 혼재돼 있다. 식육점에서 나는 날고기 냄새인가 싶었지만 소, 돼지, 닭 등 흔히 맡아오던 것과는 어딘가 달랐다.

“개 사체(개고기) 냄새예요.” 축산물 거리 한켠에 서 있던 박운선 ㈔동물보호단체 행강(이하 행강) 대표가 말했다. 개 식용에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 등은 식용으로 도살된 개고기를 ‘개 사체’라고 부른다. “개 사체에서 나는 특유의 누린내죠. 소나 돼지와는 달라요. 더 강하고 역한 냄새가 나죠”. 박 대표가 말을 이어갔다. “육안으로도 구별이 됩니다. 개 사체는 껍질이 약간 더 거무튀튀하고 살의 조직도 더 치밀합니다. 털을 그을린 자국도 남아 있어요”.

현재 축산물 거리에는 ‘개고기’는 물론 이와 관련된 표현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식육점들의 간판이나 입간판을 보면 소, 돼지, 닭, 양, 토끼, 오리, 거위, 말 등의 고기를 판매한다고 돼 있다. 일명 ‘영양탕’집이 대부분인 식당들은 ‘흑염소탕’을 간판에 내걸고 있다. 한 식당은 간판에서 ‘보신탕’을 검게 지운 흔적이 보였다. 십수 년째 이어져온 개 식용 논란을 의식한 결과다.

간판에는 없지만 식육점 앞 냉장 진열장에 전시된 고기 중 상당수가 개고기다. 부위별로 큼지막하게 썰어놓은 가게도 있고, 앞다리부터 갈비와 뒷다리까지 이어지는 반 마리를 통째로 진열한 가게도 보인다. 한 식육점 주인에게 개고기가 있는지 물어봤다. “얼마나 찾으시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옆가게에선 한 노부부가 개고기를 사기 위해 주인과 한창 흥정 중이었다. 개고기를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손에 꼽을 정도다. 거리도 한산하다. 거리 끝편에는 제법 넓은 가게 2곳이 공실로 남아 있다. 개고기 진열장 옆에 의자를 놓고 앉은 한 상인은 연신 부채질만 해댔다.

모란시장 축산물 거리 끝에 위치한 상가 공실에 ‘점포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생각해보면, 이곳은 모란시장에서 가장 ‘모순적인’ 공간이다. 같은 고깃덩이를 놓고도 혹자는 음식을 뜻하는 ‘개고기’라 부르고, 누군가는 시체를 가리키는 ‘개 사체’라고 말한다. 조용한 이곳과 달리 바로 옆골목에는 사람이 북적이는 기름 거리가 있고, 건너편 오일장은 추석을 앞두고 모여드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박 대표는 수년째 축산물 거리에서 ‘개 식용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캠페인 트럭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 끊임없이 개 사육과 개 도살 관련 영상을 튼다. 거리에 서서 왼쪽을 보면 개고기가 널려 있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철창에 갇힌 개들의 비명이 들리는 형국이다. 할머니와 손주가 한 식육점을 찾았다. 손주 품에는 반려견이 안겨 있다. 할머니가 개고기 가격을 물어보는 동안 손주는 옆에서 반려견을 내려놓고 요리조리 장난을 쳤다.

“법으로 못 먹게 하는 게 말이 되나”

박 대표는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라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이곳에선 개 도살도 함께 이뤄졌다. 박 대표는 “지금 보이는 식육점들 뒤편으로 도살장이 있었다”며 “(살아 있는) 우리에서 손님이 마음에 드는 개를 지목하면 즉석에서 도살과 고기 판매가 이뤄지던 방식”이라고 말했다. 성남시와 상인협회가 개 진열 금지와 도살장 폐쇄에 합의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초 양측은 도살장 폐쇄를 포함해 축산물 거리에서 개고기와 보신탕도 단계적으로 판매를 안 하는 쪽으로 협의를 진행했다. 식육점과 식당 등엔 성남시가 전업에 필요한 여러 지원을 하는 방식이었다. 성남시장이 바뀌고 추가적인 협의가 막혔다.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돼버린 모양새다. 개고기 판매를 중단하고 일반 건강원으로 전업했던 A씨의 경우 몇 달 뒤 다시 개고기를 팔기 시작했다. 그는 “장사가 안 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동물보호단체 ‘행강’이 모란시장 축산물 거리에서 ‘동물학대 강력처벌’ 현수막을 걸고 ‘개식용 종식 촉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왼편으로 개고기를 판매하는 식육점들이 보인다(위). 9월 4일 열린 모란 전통 오일장 입구 주변에 무허가 동물 판매 단속 및 처벌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도살장이 있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개고기 판매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다. 축산물위생관리법, 식품위생법, 동물보호법 등에 따르면 식용 목적의 개 도살과 개고기 유통은 불법으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오랜 관행이란 이유로, 어떤 법도 명확히 이를 불법이라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고기 판매는 이뤄지고 있다. 캠페인을 하던 박 대표 트럭 옆으로 경찰차가 출동했다. 차에서 내린 경찰은 잠시 트럭 주변을 살펴본 뒤 자리를 떴다. 개고기 판매 단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 대표는 “상인 중 누군가 소음 신고를 한 모양인데 집회시위 기준에 맞게 운영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한 달에도 몇 번씩 상인들과 크고 작은 충돌이 있다”고 말했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 몇몇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전광판의 영상을 들여다봤다.

모란시장 축산물 거리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판매 중인 보신탕. 점심시간이 되자 음식점 대부분이 손님으로 꽉 들어찼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한산했던 축산물 거리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보신탕을 찾는 인파다. 30분가량 지나자 식당은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자리가 부족해 야외테이블에 앉은 손님들도 여럿 보였다. 손님 대부분은 60~70대 이상 노인층이었다. 한 식당 주인에게 장사가 잘 되는지 물었다. 그는 “잘되는 편”이라며 “흑염소탕, 오리탕 등도 같이 팔지만 손님들이 거의 다 보신탕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야외테이블에 앉은 한 단체 일행도 보신탕을 주문했다. 70대인 친구 6명이 장날에 맞춰 만나 점심을 함께하러 들렀다는 이들에게 “개 식용을 법으로 못하게 만든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다들 “그게 말이 되는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술잔이 돌았다. 이중 한명은 “그럼 집에서 먹는 것도 불법이 되고 잡혀가나”라며 “어릴 적부터 몇십 년간 개고기를 먹었는데 갑자기 불법이 된다면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개고기 없애면 시장 더 활성화될 것”

길 건너 전통 오일장이 열리는 광장 쪽으로 걸으니 초입에 “무허가 동물판매업자 집중단속 실시”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오일장은 강아지나 고양이, 토끼, 햄스터 등의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특히 강아지의 경우 유기견이나 도축용 개, 식용 개고기를 판매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8월부터는 상인회와 동물보호단체가 머리를 맞댄 결과 동물 판매를 중단했다. 지자체도 동물 상당수가 ‘출처’를 알기 어려운 데다, 악취와 위생문제 등도 있어 꾸준히 단속 중이다.

모란 전통 오일장 모습. 2022년 8월부터 동물판매가 금지되면서 지금은 오일장에서 강아지나 고양이 등을 찾아볼 수 없다.



과거보다 개선됐다지만, 개고기와 관련된 모란시장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전하다. 현장 도축 논란이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다. 성남시의 경우 축산물 거리에서 도축장을 없애기로 상인들과 합의한 뒤 ‘이동식 도축 차량’을 제공했다. 차량은 현재 상인회 측이 운영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등은 이 도축 차량에서 여전히 개 도축이 이뤄질 뿐더러 차량을 통해 개 사체(개고기)를 운반한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물론 상인회 측은 이를 부인한다. 행강 측도 해당 문제를 검찰에 고발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박 대표는 “시장을 둘러보면 20~30대 젊은 방문객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모란시장에서 개고기 판매와 유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미지 개선이 이뤄지면 더 많은 방문객이 시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모란시장 구경을 처음 나왔다는 30대 여성 B씨는 “유튜브 등에서만 접하던 개고기 판매 모습을 시장에 와서 실제로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며 “시장에 와보니 이밖에도 볼거리가 많은데, 개고기를 판다는 이미지와 선입견 때문에 특히 젊은층에서 모란시장 방문을 꺼리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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