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개 식용 종식’ 입법까진 ‘산 넘어 산’

2023. 9.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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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국제 강아지의 날’을 맞아 동물해방물결 등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서울 신촌에서 개 도살장을 형상화한 철창을 놓고 개 식용 종식, 동물권 보호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서 질문 하나. 당신이 애지중지하며 함께 살던 반려견이 죽었다. 반려견을 위해 시간을 내 장례를 치르기로 한 당신, 갑자기 연락이 왔다. 평소 왕래가 드물던 조부모의 부고 소식이다. 공교롭게도 조부모의 장례식과 반려견의 장례식 시간이 겹친다. 꼭 한 곳만 참석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칫 ‘패륜(悖倫)’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질문은 지난 8월 한 여론조사 업체에서 남녀 성인 3000명에게 실제로 물었던 내용이다. 1인 가구 증가 등 변화하는 가구 형태에 따라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아보자는 차원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20~30대 연령층에선 약 14%가 반려견의 장례식을 선택했다. 40~50대는 9.0%가, 60대 이상은 5.1%가 반려견을 택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연령대별로 10~23%에 달했다.

KB경영연구소의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를 보면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가구는 전국 552만 가구(1262만명)다. 이중 반려견 가구가 394만 가구(901만명)로 71.3%를 차지했다. 2020년 기준 국내 총 2073만 가구이니, 약 다섯 집당 한 집은 개와 함께 산다는 뜻이 된다. 반려견과의 ‘동행’은 이제 보편을 넘어 일상이 됐다.

질문이 하나 더 있다. 반려견이 가족이나 진배없다는 지금, 우리는 법으로 개 식용을 금지할 수 있을까. 논쟁을 위한 질문이 아니다. 선택을 위한 질문이다. 국회에는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결의안’이 이미 지난 8월 말 제출됐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개 식용 종식 특별법안’도 여럿 발의했다.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는 “현 정권 임기 내 개 식용 종식”을 공언하고 있다. 허용이냐 금지냐를 놓고 수십 년 넘게 논란이 이어져온 개 식용 문제가 올해 최대 변곡점을 만났다.

전통시장을 찾은 김건희 여사가 한 반려견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개고기 금지령’부터 ‘사회적 논의기구’까지

개 식용의 ‘기원’을 놓고 멀게는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주장도 있지만, 개 식용이 법으로 ‘명문화’된 것은 1973년 축산법 개정을 통해 ‘가축’의 범주에 개가 포함되면서부터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가 ‘개 식용 명문화 50주년’이 되는 셈이다. ‘개 식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오래전부터 나왔다. 정부는 1975년 축산물가공처리법(현 축산물위생관리법)에도 개를 가축으로 올렸다가 국내외에서 개 식용 비판이 일자 1978년에 다시 개를 제외했다. 당시 정부 조치는 ‘식용으로 키우는 건 합법(가축법)’인데 ‘도살·유통하는 것은 불법(축산물위생관리법 등)’인 현재의 모순적인 상황을 낳은 단초가 됐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인 1984년엔 서울시가 ‘개고기 금지령’을 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외적으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명분이었다. 보신탕 판매를 금지했고, 단속반이 돌았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흐지부지됐다. 1990년대 들어 반려견을 키우는 집들이 늘어나고, ‘동물 복지’ 개념이 확산하면서 동물보호단체 등을 중심으로 개 식용 종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본격화됐다. 이에 대한 반동도 일었다. 2001년 12월 당시 여당 의원과 각계각층 인사 등 166명은 “개 식용은 고유한 음식문화로 다른 나라에서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라며 ‘개고기 불간섭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선언에는 유명 진보 정치인·지식인들도 대거 참여했다.

이후에도 개 식용 종식 문제는 꾸준히 논쟁의 대상이 됐지만 ‘주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동물 복지’를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내걸고 당선되면서 전환점이 마련됐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2021년 12월에 ‘개 식용의 공식적 종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기구’가 출범했다. 정부와 개 사육 농가 및 상인, 동물보호단체 등이 모여 해결책을 찾고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취지와 달리 정권 말에 출범한 사회적 논의기구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초 예정된 활동기한인 2022년 4월까지 일곱 차례 전체회의를 열었다. 소위원회도 일곱 번 열었지만, 보상문제나 식용 종식 시점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인 지난해 5월에 논의기구는 “활동을 두 달 더 연장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의가 다시 열리지도, 장외 논의도 전개하지 못한 채 논의기구는 최근까지 ‘개점휴업’인 상태다.



김건희가 살린 ‘개 식용 종식’, 국회로 ‘활활’

논의기구의 실패로 꺼져가던 ‘불씨’를 살린 이는 다름 아닌 김건희 여사다. 김 여사는 지난 4월 초 동물보호단체들과의 간담회에서 “현 정권 임기 내 개 식용 종식을 위해 노력하겠다. 그게 내 본분”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참에 (개 식용 종식을) 입법으로 끝내자”고 맞장구치면서 멍석이 깔렸다.

김 여사 발언 한 달 뒤인 5월엔 평소 개 식용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태영호·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동물보호법 개정안 등의 관련 법안을 국회에 냈다. 6월이 되자 한정애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 12명은 아예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안’을 제출했다. 그간 축산법이나 축산물위생법, 동물보호법, 식품안전법 등의 개정을 통해 ‘우회적’으로 개 식용 종식을 유도하려던 움직임과 비교하면 거의 급발진 수준의 법안이다. 8월에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모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44명의 의원이 모임에 합류했고, 이들은 8월 22일 국회에 ‘개 식용 종식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정치권에서는 “줄곧 반목하던 정부·여당과 야당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힘을 모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의안 내용은 ‘속전속결’ 그 자체다. 국회 차원에서 정부가 개 식용 종식 시점, 폐업 및 업종 전환 시의 지원대책 등을 포함한 ‘개 식용 종식 로드맵’을 조속히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개점휴업 상태인 사회적 논의기구를 국무총리 책임하에 즉각 재가동해 10월까지 이해당사자 간 합의안을 마련하라고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제출된 ‘개 식용 종식 특별법안’을 비롯해 관련 축산법, 동물보호법 등을 올해 말까지 일괄 통과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결의안대로라면 수십 년간 끌어온 개 식용 문제가 불과 넉 달여 만에 해결되게 된다.

2019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개 식용 철폐 전국 대집회’에 보호자를 따라 나온 반려견이 ‘개 식용 종식’이 쓰여진 손수건을 두르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민주당은 현재 ‘개 식용 종식’의 정식 당론 채택을 추진 중이다. 정의당과 진보 성향 무소속 의원들이 결의안 채택에 가장 적극적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경우 결의안에 참여한 의원 수가 야당에 비해 많지는 않다. 입법을 통해 개 식용을 금지하는 데 대한 거부 여론이 있는 점 등을 들어 당 내부의 부정적인 시각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김 여사가 개 식용 종식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여당이 지원에 나서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9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이 ‘개 식용 금지법’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그런 방침을 정한 적이 없다”며 “김건희법(개 식용 종식 특별법) 추진은 변함이 없다. 야당의 대승적인 협력을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 정책위의장이 빈말하진 않을 것”이라며 “정기국회에서 결의안과 특별법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택일 동물보호연대 정책팀장은 “개 식용에 대한 인식을 묻는 최근 조사에서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무려 93%로 나왔고,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입법을 추진 중”이라며 “특별법의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법에 뭐가 담겼나, 대만은 19년 걸려

법안 이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현재까지 국회에 제출된 개 식용 종식 특별법안은 모두 4개(모두 공동 발의)다. 여당에서 2개, 야당에서 2개를 각각 냈다. 여당 발의 특별법안에 참여한 여당 의원들을 보면 중진을 포함해 전체 30명으로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특별법안 내용은 4개안이 대체로 비슷하다. 식용 목적의 개 사육·도살·유통 금지, 개를 사용한 음식의 판매나 알선 등의 금지, 위반 시 처벌(징역 최대 3~5년) 및 위반 행위자의 개 소유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조항들은 특별법이 통과된 뒤 5년 후부터 적용토록 했다. 개 사육 농가에 대한 보상 및 지원, 정부의 대책 수립 등의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여당안과 야당안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개 식용 행위’에 대해서도 금지를 명시했는지 여부다. 여당안의 경우 개 식용 행위에 대해선 금지 사항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야당안은 “섭취도 안 된다”며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섭취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을 따로 두지 않았다. 종합하면, 여야 모두 개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데 따른 반발과 혼선,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해 개 식용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수요’를 제재하기보다는 ‘공급’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특별법안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2023년 4월 25일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앞에서 대한육견협회 회원들이 김건희 여사의 ‘임기 내 개 식용 종식’ 발언을 비판하는 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대한육견협회 제공



국회입법조사처의 2020년 동향 보고서를 보면 대만의 경우 1998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개 도살을 금지한 이래 2017년 4월 최종적으로 ‘개·고양이 식용 금지’를 법 조항으로 마련하기까지 1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대만은 2001년(경제적 목적의 반려동물 도살 금지), 2007년(개·고양이 도살 금지 및 동물 사체 판매 금지), 2015년(개·고양이 도살 시 1년 이하 징역) 등 동물보호법을 단계적으로 개정해 개 식용 금지까지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법은 결국 사회 변화를 따라가게 돼 있다”며 “사회구성원 다수가 동의한다면 단기간의 법 개정으로도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콩도 개 식용 금지 및 처벌 조항이 있다. 필리핀의 경우 마닐라시가 조례를 통해 개 도살과 유통을 금지한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중국의 경우 개 식용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코로나19 확산 문제 등으로 지방정부 차원에서 개 식용을 금지하려는 입법 움직임이 있다고 보고서가 밝혔다.

사육 농가 반발, 반대 여론 ‘변수’ 넘어야

김건희 여사가 물심양면으로 밀고 여야가 대동단결한다 해도 개 식용 종식법안이 최종 마련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깝게는 개 식용 종식에 따른 사육농가, 보신탕 등 음식을 파는 상인들의 반발 문제가 있다. 사육 농가의 경우 현재 단체별로 다소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환로 전국육견인협회 사무총장은 “사육농가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과 전업에 따른 지원 등이 충분히 이뤄진다면 국민의 뜻에 따라 개 식용 종식 움직임에 동참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식주권·생존권 위원장은 “개 식용은 1000만 국민의 오랜 식주권이자 사육농가의 생존권”이라며 “법을 통한 식용 금지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상인들의 입장 역시 가게 영업이 잘 되는지 여부, 매출 규모 등에 따라 입장이 엇갈린다. 주 위원장은 “이미 개고기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이고, 찾는 분들도 대부분 60~70대 어르신층”이라며 “법으로 강제하기보단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식용 문화가 소멸하도록 놔두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농가와 상인들을 어떻게든 설득한다 해도 보상과 지원 등에 현실적으로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가 올 초 시행한 실태조사를 보면 전국 1156곳의 개 농장에서 약 52만 마리가 사육돼 연간 약 38만 마리가 소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농가의 주장처럼 개 한 마리당 60만원씩 보상한다고 가정해도 보상에만 수천억원이 소요된다. 더욱이 육견협회 등은 “정부 실태조사가 과소 추정됐다”며 실제 사육되는 개가 약 100만 마리, 소비되는 개가 연간 약 70만 마리(7만t)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개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만 전국 1666개에 달하는 점까지 감안하면 보상 및 지원 비용 등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다.

막상 법으로 개 식용을 금지할 경우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으리란 전망도 있다. 리얼미터가 2018년 6월 실시한 ‘개 식용 금지법’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반대가 51.5%로 찬성(39.7%)보다 높게 나왔다.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1년 10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46.4%로 반대(46.0%)를 오차 범위에서 겨우 앞섰다. 정부가 올들어 실시한 비공개 여론조사에서도 반대가 60%가량으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을 통해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지속적인 운영을 통해 합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며 “관련 법안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쟁점이나 검토사항 등 정부 입장을 전달하고 국회와도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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