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10개월 만에 90달러 돌파…심상찮은 ‘물가’

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의 한 유전에서 펌프 잭이 작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원유 공급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만에 배럴당 90달러를 넘겼다. 국제유가가 예상 밖으로 오르면 주춤하던 원유 수입가격 상승을 통해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도 악화시킬 수 있어 경제 전반에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WTI 배럴당 90.16달러 마감…사우디 감산 등 영향

1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1.64달러(1.85%) 오른 배럴당 90.1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1월7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5일 90달러를 넘은 후 90달러 내외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브렌트유 가격도 올랐다. 이날 런던 ICE 거래소에서 11월 인도 브렌트유 가격은 1.82달러(2%) 오른 배럴당 93.70달러로 마감했다. 브렌트유는 이날 지난해 11월15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6월 6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가 약 3개월만에 다시 90달러대로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국제유가는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기구플러스(OPEC+)가 감산 조치에 나선 영향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제기되면서 7월부터 상승세를 그려왔다.

이날은 특히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1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이 연장된 여파로 올해 4분기까지 원유 공급 부족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밝힌 것이 유가를 끌어올렸다. 지난주 사우디는 하루 100만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연말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고, 러시아도 하루 30만배럴의 수출 규모를 연말까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아프리카의 주요 산유국인 리비아에서도 최근 홍수 피해로 인한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공급은 줄어드는 반면 수요는 줄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유가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우선 미국이 경기 침체를 겪지 않고 연착륙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원유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잇따라 유동성 공급 조치를 내놓고 있는 것도 원유 수요를 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물가 자극하는 유가…통화정책 변수 될까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면 경제 전반에 충격이 불가피하다.

우선 최근 다시 3%대로 상승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국제유가의 상승으로 더 자극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크다.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7% 올라 지난 7월(3.2%)보다 물가 상승폭이 커졌다. 휘발유 가격이 10.6% 오르면서 물가 상승을 자극했다.

국내 소비자물가도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4% 올랐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5.2%) 이후 6개월 연속 둔화해 6~7월에는 2%대까지 떨어졌는데, 지난 8월에는 국제 유가의 상승과 폭염·호우의 영향으로 상승폭이 다시 커졌다.

또 에너지 수입 비용이 늘어나면서 힘겹게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유가 상승 추세가 물가 안정을 방해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강도에도 영향을 줄 정도의 변수가 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오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 결정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유가 관련 발언을 주시해야 한다”며 “에너지 가격의 변수가 많아지면 추가적 금리 인상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