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사태’ 같은 ‘멤버 빼가기’ 많아…누가 갑인가”
“아티스트, 사회적 약자 가정하는 조항 많아…표준전속계약서 개정해야”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전속계약 분쟁 사건으로 '탬퍼링(전속계약 기간 중 사전 접촉하는 행위)'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가요계 관계자들이 이 같은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가수와 기획사 간 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표준전속계약서에 대한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인디 음악계에서도 탬퍼링 행위 대놓고 이뤄져"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이하 음레협)는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MPMG 빌딩에서 '대중음악산업 발전 세미나'를 열고 기획사와 아티스트 간의 계약 분쟁 사례와 탬퍼링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가요계 관계자들은 현재 정부에서 권고하는 표준전속계약서가 계약 분쟁 및 탬퍼링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구속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최찬영 패닉버튼 대표는 "현재 표준전속계약서는 제작사와 아티스트를 명확한 갑과 을로 나누고, 아티스트를 사회적 약자로 가정하는 조항이 많다"며 "싱어송라이터의 경우, 아티스트가 원천 콘텐츠 생산자고 매니지먼트는 이를 판매 대리하는 입장이다. 누가 과연 갑이고 을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디 음악계의 경우 아이돌 업계보다 탬퍼링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동환 음레협 회장은 "탬퍼링 행위가 대놓고 이뤄지는데도 인디 레이블의 경우 돈이 없어 소송도 제기하지 못한다"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임시로 계약의 효력을 멈추는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이 기획사 측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소속 가수와 전속계약 분쟁을 진행 중인 한 기획사 대표는 "소속 아티스트가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인용이 된 지 일주일 만에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법원에서는 본안 소송을 통해 손해 배상을 청구하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업계의 이미지는 이미 손상됐다. 사전 접촉 행위를 법적으로 입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뢰가 깨졌다는 아티스트의 주장만으로 가처분 신청이 쉽게 인용됐다. 계약서가 무슨 의미가 있나 의문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사전 접촉 행위와 관련해 중소 기획사를 보호할 수 있도록 대중문화예술발전법 개정안 발의를 건의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속계약, 자유 전적 박탈하지 않는다는 관점 고려해야"
남성철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가처분은 가수의 임시적인 지위를 정하는 것뿐인데, 마치 본안 판결이 내려진 것처럼 가수가 다른 기획사와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며 "재판에서 가처분 효력이 인정되더라도 제3자와 접촉을 금하는 장치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통상적으로 재판부는 전속계약이 소속 아티스트의 자유권을 제약한다는 걸 전제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속계약이 반드시 아티스트의 자유를 전적으로 박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점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 차원에서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8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정부 질문을 통해 "멤버를 빼가거나, 예술가가 만든 콘텐츠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불법 유통되는 문제는 우리 미래 먹거리인 콘텐츠 산업을 죽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유사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연내 관련 표준계약서 기준 등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피프티 피프티는 《큐피드》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 진출하면서 전 세계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6월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은 소속사 어트랙트 측이 계약을 위반하고 신뢰 관계를 파탄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후 어트랙트 측은 입장문을 내고 "외부 세력이 아티스트에게 접근해 계약 위반을 종용하고 있다"고 밝히며 외부 세력으로 안성일 더기버스 대표를 지목했다. 당시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이 사태에 대해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불순한 세력의 기회주의적 인재 가로채기는 K팝의 근본을 일궈낸 제작자와 아티스트 성장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고 양측의 조정을 권유하는 조정 기일을 열었지만 성립 및 불성립에 대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법원이 양측이 사적으로 만나 오해를 풀라고 권고했지만,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은 조정 의사가 없다는 뜻을 법원에 전했다.
이에 지난달 28일 법원은 피프티 피프티가 어트랙트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네 명의 멤버들은 일단 어트랙트 소속으로 남게 됐지만, 이들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바른 측은 지난달 30일 "즉시 항고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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