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미술관 3편] "묵직하게 걸어간 외길"…권진규 조각가

최이현 기자 2023. 9. 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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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12]

교과서 속 미술작품에 얽힌 뒷얘기를 들어보는, 교과서 미술관 시간입니다.


오늘은 묵직하게 자신만의 조각 세계를 구축한 거장, 권진규 조각가와 대표작을 알아보겠습니다.


최이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린 권진규 작가의 대표작 <지원의 얼굴>입니다.


높은 코, 큰 눈에 스카프를 뒤집어쓴 둥근 머리. 


홍익대 강사 시절, 학생 장지원을 모티브로 빚었습니다.


스카프로 가려진 귀는 높은 자존감으로, 길고 마른 형태는 고차원적 정신성으로 해석됩니다.


"권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66년 봄 홍익대학교에서였다. '누구것을 만들어 볼까.' 하시는 것을 '저요….'하고 손을 들었던 것이다." - 권진규 평전(106P) 중 


권진규 조각가는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늑막염을 앓아 춘천 공립중학교를 만 20세 늦깎이로 졸업하던 해, 친형을 따라갔던 도쿄 히비야 음악당에서 '음악을 양감으로 빚어낼 수 없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조각과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한 권 작가의 스승은 시미즈 다카시. 


프랑스 근대 조각 거장, 앙투안 브루델의 제자로 근대 구상 조각의 맥을 세운 인물입니다.


권 조각가는 대학시절, 이미 일본 미술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유망한 신진작가로 이름을 알리던 그는 8년 만에 돌연 귀국했습니다.


한 미술평론가는 "탈바꿈의 내적 요청 때문에 귀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성북동에 아뜰리에를 짓고, 본격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던 권 조각가.


1960년대, 미국 유학파 출신의 추상 조각파가 주류로 자리 잡았던 한국 미술계에서 그는 추상보다는 구상, 고대미를 추구하는 길을 갔습니다.


권 작가는 청동보다, 흙으로 빚는 테라코타를 선호했습니다.


"돌이나 브론즈는 썩지만 테라코타는 썩지 않는다."


"불로 구울 때 발생하는 우연성이 재밌다. 마지막 과정을 남에게 넘겨주지 않고, 작가의 손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 좋다." - 권진규


함흥 출신답게 어렸을 때부터 자주 보던 말의 두상을 주로 빚었고, 사람 모델은 주로 주변 사람을 택했습니다.


일본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은 기사 한 줄 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려대학교 박물관 이규호 학예관의 눈에 띄어 작품 몇 점이 고대 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며, 만든 자소상과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도모'로 추정되는 비구니.


부부처럼 보이는 한 쌍. 


그리고 즐겨 만들던 <마두> 시리즈.


권 작가가 세상을 등지기 전 마지막 들른 곳도 바로 고대 박물관입니다.


같은 날 인생은 공(空), 파멸라는 유서를 남기고 50대 초, 세상을 등졌습니다.


최근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아버지이기도 한, 허명회 교수는 권진규 작가가 가장 애정하는 조카였습니다.


꽃게는 권 작가가 조카를 부르던 애칭이었습니다.


인터뷰: 허명회 교수 / 고려대학교

"작품 조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예술에 관한 그런 대화 상대로 특히 어린 저를 상대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스승이자 친구 같은 외삼촌을 잃은 조카.


인터뷰: 허명회 교수 / 고려대학교

"(돌아가시기 직전에) 본인이 갖고있는 모든 그 석고본을 다 부수셨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아쉽죠.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당시 중학생이던 허 교수는 삼촌의 죽음에 재능 많던 붓을 꺾었습니다.


예술과 수학의 본질은 같다는 삼촌 말을 기억하며 수학에 매달리다가, 예순이 넘어서야 다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권진규 조각가의 작품 140여 점이 '영원한 집'을 찾았습니다.


유족이 춘천에 권진규 미술관을 짓는 조건으로 작품들을 한 기업에 양도했다가, 대부업 담보로 넘어가는 우여곡절도 겪었습니다.


이중섭 화백의 작품 황소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 <흰소>부터


권진규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도모를 표현한 작품까지 만나 볼수 있습니다.


인터뷰: 허경회 대표 /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조카

"염원이 그거죠. 이제 권진규 외삼촌 그러니까 (권진규의 여동생 권경숙 씨가) 오빠 작품을 한데 모아서 상설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려야 되겠다라는 게…."


"가장 예술사적으로 성공한 작가" 작품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다시 이뤄지고 있습니다.


나력으로 걸어간 그의 외길 인생이 꿋꿋하게 예술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고 있습니다.


EBS 뉴스 최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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