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 지역'인구'보다 지역'활력'이 우선이다
[김영롱 가천대 스마트시티융합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인구 관련 정책은 많은 부분 일본을 벤치마킹하였다. 일본 사회가 고령화, 인구 감소 문제를 우리나라보다 수십 년 먼저 경험해왔다는 점에서 이를 보고 정책 시사점을 찾는 것 접근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비슷한 듯 다른 두 나라의 배경을 고려하면, 정책 효과까지도 그대로 가져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지방소멸'이라는 용어는 마스다 히로야(増田寛也)가 2014년 일본에서 출간한 책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지역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경각심 이상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지방소멸대응기금'과 같이 제도의 이름까지 꿰차게 된 것을 보면 수조 원에 달하는 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자극적인 이름이 필요했던 것인가 하는 쓴웃음이 지어진다.
또 다른 예로 올해부터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에서 2008년에 시행된 '고향세'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은 남한 면적의 약 3.8배이며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토로 인해 다양한 기후, 식생, 문화를 갖고 있다. 많은 내국인이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지역의 특색을 담은 고급스럽게 포장된 선물을 사 들고 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에 특정 지역에 기부금을 보내고 지역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받는 정책이 자연스럽게 안착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과연 이러한 지역 문화가 사전에 형성되어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지방 재정 및 자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그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향사랑기부제가 기부금 세액공제 외에 기댈 곳이 없다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역의 인구를 늘리는 정책은 효과적이었는가?
우리나라에서 인구 감소 문제가 처음 대두되었던 2000년대 초반의 인구 정책은 대부분 자연적 인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중에서도 지자체별로 수백만 원 수준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실제로 몇몇 군 지역의 경우에는 출산율이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인근 지자체 간에 장려금 경쟁으로 치닫는 모습도 있었다.
물론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환경에서 출산과 양육비 부담이 장려금으로 일부 보전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특정 지역에 한해 높아졌던 출산율도 유지되기는 어렵다. 결정적으로 국가 전체의 차원에서는 정책 예산 효율성이 떨어지는 네거티브섬(negative sum) 게임이 되어버렸다.
사실 지역의 인구 감소 문제는 자연적 인구보다 사회적 인구에 주목해야 한다. 지방 도시 인구는 인근 대도시로 유출되고 그보다 더 많은 인구는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있다.
이러한 수도권 인구 집중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균형발전에 대해서는 지난 수십 년간 수조 원의 재원이 투입되고 있다. 그 정책 효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 수도권 집중은 더욱 가속화되기만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거주인구'(residential population)의 이동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거주인구의 기준에서만 본다면 서울은 이미 1992년 1,097만 명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줄곧 쇠퇴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서울의 중심지 기능은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인구 감소 시대에 오히려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경기도, 인천시의 배후 인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매일 같이 수백만 명의 서울 외 거주인구가 통근, 통학, 쇼핑을 위해 서울로 이동하여 시간을 보내고 소비를 한다. 즉 수도권, 그중에서도 서울의 중심성은 거주인구의 집중보다는 매일 같이 오고 가는 일상적인 이동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지역인구 감소보다 지역활력 감소가 당면한 문제
현재의 인구 감소 추세를 수치 그대로 수십 년 후의 미래에 대입하면 특정 지역의 인구가 0에 도달하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구가 0에 도달하는 시점을 걱정하는 것이 맞는가?
'지방소멸' 담론으로 인해 정말로 어떤 지역이 소멸해버릴 것과 같은 공포감은 더욱 가깝게 당면한 문제를 가려버리는 문제가 있다. 사실 인구가 완전히 0에 수렴하여 지역이 소멸하기 전에 보다 즉각적으로 위기감을 가져야 할 것은 지역활력의 감소이다.
지역활력(regional vitality)이란 지역을 하나의 유기체(organism)로 간주하고 얼마나 활발하게 사회 및 경제 활동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마치 우리 몸에 활력이 있어야 실질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지역에도 활력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지역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는 시각은 특히 최근 기후 위기와 팬데믹 위기를 겪으며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적응성(adaptability), 회복탄력성(resilience) 등의 개념도 모두 우리 사회와 지역을 생명체로 보는 관점에서 유래하였다.
사실 지역활력의 차원에서는 이미 인구 감소 문제 이전부터 특정 지역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는 훨씬 많았다. 지역활력이 낮은 문제는 무시하고 지역인구의 감소만 막겠다는 것은 이미 활력이 다한 생명체에 무리한 연명치료를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몸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약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것처럼, 지역활력을 높이는 것도 지역의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복합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지역활력을 높이는 것은 거주인구보다 생활인구
지역활력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 거주인구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인구이다. 서울의 거주인구는 감소하지만 지역활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이를 보여준다.
생활인구의 중요성은 이미 다양한 연구를 통해 강조되었으며, 최근 국가 정책에도 수용되었다. 지난 5월 18일 행정안전부는 '생활인구의 세부요건 등에 관한 규정'을 통해 생활인구를 어떻게 산정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안을 내놓았다.
이 규정에 따르면 생활인구는 주민(주민등록기준), 방문자(하루 3시간 이상 머무는 횟수가 월 1회 이상), 외국인(등록외국인과 국내거소신고 재외동포)으로 구성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방문자'의 기준이 꽤 구체적으로 규정에 명시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하루에 3시간 이상 머물렀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과거에는 설문 응답 방식의 조사를 통해 어느 지역에 3시간 이상 머물렀는지를 확인했을 것이다. 매일 꼼꼼하게 일기를 쓰는 사람조차도 내가 어느 지역에 정확히 몇 시간 머물렀는지까지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더 길거나 짧은 시간 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본의 아니게 또는 허위로 답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휴대전화의 위치를 기반으로 한 생활인구 빅데이터가 활용될 예정이다. 현대인이라면 24시간 언제나 내 몸에 꼭 붙어 다니는 휴대전화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국민들의 생활 위치를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측정 및 수집 알고리즘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이론적으로는 시간적으로 초 단위, 공간적으로 미터 단위로 집계할 수 있으니 방문자의 체류 시간 기준에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든지 방문자 수를 헤아릴 수 있다.
생활인구에 따르는 새로운 질문들
생활인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출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정책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고민과 토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관광지역의 경우에는 계절에 따라 방문자 수의 차이가 큰데 어떤 달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밤 문화가 발달한 지역의 경우에는 낮보다 밤에 방문하는 인구가 많은데 어떤 시간대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가장 방문자 수가 많았던 때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24시간 평균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단순히 방문자 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역활력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확장한다면 더욱 많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교통 환승객들은 단순히 환승을 목적으로 머물렀던 지역의 활력에 기여하는 것인가? 해당 지역에서 오래 머무르기는 하였으나 식사, 숙박 등의 소비는 다른 지역에서 한다면 지역활력에 기여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활력이라는 새로운 개념, 생활인구라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한 이유는 이미 지역인구라는 기존의 개념, 거주인구라는 기존의 지표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숫자뿐인 거주인구에 집착하기보다, 실질적으로 지역활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책을 두고 활발한 토론이 필요한 때이다.
■ 필자소개
김영롱은 Clark University에서 도시활력의 문제를 공간빅데이터로 연구한 박사논문으로 지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가천대학교 스마트시티융합학과에서 도시빅데이터, 도시경제, 가상공간을 주제로 연구하고,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에 기반한 스마트시티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김영롱 가천대 스마트시티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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