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지쳐 있는 느낌" 암울한 독일 상황…기업들 '탈출 러시'
노동력·투자 부족에 고질적 관료주의 겹쳐
獨 경제 지탱해 오던 기업들 줄줄이 탈독일
독일에서 130년 가까이 크랭크샤프트를 생산해 온 헬러의 클라우스 윙클러 회장은 “독일인보다 적게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견습 제도 지원자들의 수준이 10년 전과 비교할 때 훨씬 떨어진다”고도 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너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인 근로자 1명당 평균 근로 시간은 주요국 대비 최하위였다.
독일 북부 솔타우에서 6대째 알루미늄 주조 공장을 운영해 온 거트 뢰더는 “독일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이곳(독일)의 모든 것들이 약간 지쳐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뢰더는 올해 신규 투자 금액 대부분을 독일이 아닌 체코 공장에 넣었다. 독일과 달리 원자력 발전을 중단하지 않아 에너지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뢰더는 “체코에는 또한 더 훌륭한 노동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경제의 중추로 불리던 중견‧중소기업들이 구조적 침체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 보도했다. 독일 제조업은 노동력 부족과 무역 장벽 강화, 고질적 관료주의, 운송‧교육‧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투자 부족 등 복합적 요인이 맞물려 “암울한 상황”이라는 평가다. 지난 7월 이 나라의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12.2% 쪼그라들었다.
기업들은 앞다퉈 ‘탈독일’을 선언하고 있다. 헬러의 윙클러 회장은 FT에 “독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아시아에서의 거점 구축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 회사는 영국 중부 도시 레디치에 위치한 공장도 확장할 계획이다. 윙클러 회장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절차가 한층 복잡해졌지만, 그래도 본사가 있는 뉘르팅겐보다는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현재 독일 기업 3분의 1이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 사업 확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화학 회사인 바스프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루트비히스하펜에 위치한 본사 규모를 축소하는 대신 중국에 100억유로를 들여 새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독일 최고 경제 연구기관 중 하나인 Ifo 연구소의 클레멘스 푸에스트 소장은 “기업들은 독일 정부가 반도체, 건설 등 일부 산업에만 수십억 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다른 부문은 놓아 줄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러시아 제재 등으로 전력 요금이 치솟자 화학과 같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은 ‘고사 위기’로 내몰렸는데, 정작 해당 산업에 대한 지원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독일 연립정부는 에너지 정책에 대한 견해차가 너무 커 정책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성장을 견인해 온 자동차 산업도 ‘중국 리스크’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전기차 제조사들의 성공에 힘입어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생산국에 올랐다. 대중 수출이 부진한 점 역시 우려 요인으로 거론된다. 올해 1~7월 독일의 대중 수출액은 전년 대비 8.1% 쪼그라들었다.
일각에선 현재 독일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전역에서 군비 지출이 늘면서 라인메탈, 렌크 등 방산 기업들이 전례 없는 수요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최대 발전사업자인 에너지 그룹 RWE의 마커스 크레버 최고경영자(CEO)는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는 현재의 분위기에 공감하지 않는다”며 “해결해야 할 도전 요소가 있지만, 경제 전반에 대한 비관론을 공유하고 있진 않다”고 했다.
다만 크레버는 “특정 부문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같은 단기적 행동주의가 아닌, 장기 성장이 담보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관료주의를 없애고, 디지털화를 촉진하고, 숙련된 노동자들을 들여오고, 교육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에스트 소장도 “독일이 직면한 많은 문제들은 고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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