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16일차’ 이재명, 아직 멀었다? 명암 엇갈린 승부수
이같은 상황에서 일부 정치인과 누리꾼은 이 대표의 단식 종료가 “아직 멀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친명계인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광화문광장에서 24일간 단식 농성을 벌인 바 있다. 정 최고위원은 ‘단식농성 선배’답게 최근 한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상상을 초월한 기간 동안 단식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내다봤다.
역대 최장 단식 기록은 故노회찬·심상정의 30일
정치인 중 역대 최장기간 단식 기록은 고 노회찬 전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세운 30일이다. 2011년 7월 당시 진보신당의 상임고문이던 이들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함께 단식 농성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손학규 전 의원 등이 나서 단식 중단을 요청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30일째 되던 날 혈압과 맥박 이상을 보이는 등 건강이 악화되자 사회 원로들의 간곡한 요청과 설득 끝에 단식 중단을 수용한 뒤 응급실로 향했다.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도 이에 못지 않게 장기간 단식을 벌였다. 그는 2005년 10월 쌀 협상 비준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이다 21일 만에 호흡곤란 증세 등을 보이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강 전 의원은 병원에서 영양을 공급받은 뒤 하루 만에 퇴원해 다시 국회 본청 로비에 자리를 잡고 총 29일간 단식에 임했다. 특히 그는 배변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복부에 된장 마사지를 해가며 버틴 것으로도 유명하다.
5시간 30분씩 릴레이 단식? 비판 쏟아지자 결국
이 대표는 지난 11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천막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밤에는 국회 당 대표실에 머무르는 이른바 ‘출퇴근 단식’을 진행했다. 그마저도 12일부터는 아예 당 대표실로 자리를 옮겼다. 24시간 실외에서 진행하는 단식 농성의 ‘국룰’을 파괴한 이 대표의 단식 행태를 두고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머리는 감으면서 왜 수염은 안 깎는 것이냐”는 의문을 가진 이들도 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하게 단식을 벌인 이가 있다. 바로 2016년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였던 이정현 전 의원이다. 그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를 주도한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이 물러날 때까지 무기한 단식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농성에 나섰다. 하지만 단식 농성 장소를 국회 당 대표실 안에 마련한 뒤 언론에는 정해진 시간에만 공개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만 하루도 채우지 못한 역대 최단 시간 단식도 있다. 2019년 정부가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을 강행하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이 임시국회 보이콧을 선언하며 릴레이 단식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오전조와 오후조를 짜서 하루 두 차례 5시간 30분씩 밥을 먹지 않는 방식으로 단식을 진행했다. 전례없던 단식 행태에 “단식농성이 뭔지 모르냐” “웰빙 단식이냐” 등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흐지부지됐다.
‘정치인 단식의 FM’ 황교안, 단식 8일 만에 의식저하
황교안 전 총리는 비교적 짧은 단식 기간에도 건강이 크게 악화하면서 최근 커뮤니티 등에서 ‘단식의 FM’으로 회자되고 있다. 2019년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그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반대 등을 촉구하며 단식 투쟁에 나섰다. 그의 단식 기간은 단 8일이었다. 하지만 단식을 시작한 지 닷새 만에 단백뇨 증상이 나타났고, 8일째 되던 날 의식이 저하되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김성태 전 의원은 조건 없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을 벌였다. 하지만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며 “더이상의 단식은 위험하다”는 의료진과 동료 의원들의 권고로 9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그는 최근 라디오에서 “몸의 면역 체계가 무너져서 단식 이후에 2년 정도는 여름에 에어컨을 끌 수 없었다. (겨울에는) 탁자 밑에다 늘 전열기를 틀고 있었다”며 “드루킹 특검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 것이 보람이었지만, 잃은 것은 건강”이라고 했다.
단식투쟁 목표 쟁취한 YS·DJ, 반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신군부가 자신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가택에 감금시킨 것에 항의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당시 그는 민주회복과 정치복원 등 민주화를 위한 전제조건 5개항을 내걸고 23일간 단식했다. 김 전 대통령은 병원에 강제 입원한 뒤에도 단식을 이어간 끝에 결국 가택연금 해제를 얻어냈고, 그의 단식은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 내각제 개헌 포기 선언,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66세였던 김 전 대통령은 13일간 곡기를 끊은 끝에 지방자치제 도입이라는 성과를 냈다.
2005년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정진석 의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법에 대한 합헌 결정을 촉구하며 11일간 단식을 했다. 결국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그의 단식도 마무리됐다.
정치인의 단식은 최후의 투쟁 방안으로 여겨진다. 두 전직 대통령이나 정 의원의 사례처럼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지만,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 채 각계 각층의 만류와 건강 악화로 인해 단식을 끝맺기도 한다. 천정배 전 의원도 2007년 한미FTA 반대를 주장하며 25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하자 주변의 의견을 받아들여 단식을 거뒀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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