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묻지마 단식' 더 하겠다는 다수당 대표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 농성을 풀지 않고 있다. 시작부터 '방탄용 단식', '세 결집용 단식'으로 명분 논란이 불거졌던 거대야당 대표의 단식 농성이 16일째다.
지난달 31일 무기한 단식을 선언한 이 대표는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일본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천명, 국정쇄신과 개각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처음부터 수용이 불가능한 요구였다.
그러고는 정작 단식 농성의 상대방으로는 국민을 지목했다. 이 대표는 지난 6일 공개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정부여당을 향해 단식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국민을 향해서 국민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고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보여드리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단식 배경을 설명했다. 국민과 싸우겠다고 하는 정부여당 윤석열 정권이 야당 대표가 굶어서 죽든 말든 무슨 관심이 있겠느냐고도 했다. 시작부터 명분과 상대방이 흐릿했으니 출구도 찾기 쉽지 않다. 이쯤 되면 '묻지마식 단식'으로 밖에 안 보인다.
'야당 지도자의 단식 농성'이라는 고유의 비장함이나 무게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3일과 5일, 언론 카메라에 잡힌 이 대표의 단식 농성장 풍경이 그렇다. 국회 본관 앞에 마련된 '단식투쟁천막' 안에 이 대표가 앉아 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지지자들이 계단 아래로 길게 줄지어 있었다. 개중에는 이 대표에게 '큰절'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큰절'이야 돌발적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늦가을 뙤약볕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지지자들을 위해 만남을 사양하는 정중한 양해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
1983년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신군부의 '정치풍토쇄신을위한특별조치법'이라는 해괴한 족쇄에 묶인 채 정계에서 강제 은퇴 당했다. 이 때 김영삼이 선택한 게 단식 농성이었다. 김영삼은 그해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계기로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언하면서 △언론통제 전면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인사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전두환 정권에 제시했다.
상도동계 모임인 '민주산악회' 인사 70여명이 즉각 동조단식에 돌입했다. 전두환 정권의 핍박에 도미해 있던 김대중 전 의원도 연대 성명을 냈다.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지도자들이 앞다퉈 단식 중단을 위한 설득에 나서는 한편, 어린 학생들까지 거리 시위에 나서 김영삼을 지지했다. 야당 지도자의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은, 국민들과 함께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폭정을 향해 던진 마지막 저항권의 행사였던 것이다. 7년 뒤 '3당 야합'에 반발하며 13일간 이어진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단식도 같았다.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고는 하나 지금의 이 대표 단식은 그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국회 다수당 대표의 단식이라니. 뜬금없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하니 정부·여당도 꿈쩍 않는다.
이 대표는 단식을 더 이어간다고 한다. 기어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는 장면이 생중계 될 모양이다. 이 대표로서는 밑지지 않는 장사다. 이미 단식 일주일만에 민주당 지지율이 7%포인트 올랐고, 당내에서도 위협적이었던 '체포동의안' 가결 여론을 부결로 굳혔다.
여기에 두번에 걸친 검찰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조사를 무위로 돌렸다. 그러니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시점을 최대한 뒤로 미루려는 전략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른바 '방탄 단식'논란이다. 이래저래 단식의 순수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정치는 없고 전쟁만 있는 지금, 이 대표의 '묻지마 식' 단식 농성에 국민들은 그렇게 피곤함만 한 뼘 더 늘고 있다. 이 대표의 말대로 국민을 위한, 국민을 향한 단식 농성이라면 이 대표는 이제 여기서 그만 멈추는 것이 순리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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