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기억과 기록] "사적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만나자던 이상민.. 이젠 유족이 면담 거부?“
- 매주 토요일마다 광주서 '릴레이 행진'.. 시민들도 공감
- 내 일만 할 수 없었다.. 분향소 지키기 위해 직장도 관둬
- 애정 표현 아끼지 않은 평범한 아이.. 옛생각만 하면 가슴 아파
- 코로나 때 졸업해 고생했는데.. 취업한 지 3개월 만에 별이 됐다
- 인파 몰린 뉴스 보면서 이상했다.. 잠들었을까 전화도 못 걸어
- 낯선 청년이 받아든 딸의 휴대폰.. 참사 당했구나 직감 김상민>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 (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김상민 씨 (10.29 참사 희생자 김연희 님 아버지)
☏ 진행자 > ‘10.29 참사, 기억과 기록’ 오늘 이야기 나눌 분은 희생자 김연희 씨의 아버님 김상민 씨입니다. 아버님 나와 계시죠?
☏ 김상민 > 예, 안녕하세요.
☏ 진행자 > 사시는 곳이 광주라고 들었는데요. 광주 전남지역 유족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 김상민 > 아시다시피 이태원참사특별법이 8월 말에 국회 행정안전위를 통과하고 앞으로 법사위와 본회의를 앞두고 있는데, 아직도 지금 지지부진하고 논의가 잘 안 되고 있어서 광주 전남 유가족들도 조금이라도 시민들에게 특별법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호소하는 차원에서 광주전역을 돌아다니며 매주 토요일에 릴레이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매주 토요일에.
☏ 김상민 > 예.
☏ 진행자 > 그럼 릴레이 행진하면 시민들 반응은 어때요?
☏ 김상민 > 간혹가다가 어떤 분들은 고생한다고 또 힘을 내라고 음료수도 이렇게 건네주신 분들도 있고, 또 기억에 남는 건 어떤 분은 떡집 사장님이셨는데 가래떡을 이렇게 갖다 주시면서 먹고 힘내라고 응원도 해주시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고 힘을 주시고 계십니다.
☏ 진행자 > 그렇군요. 아버님 지난 2월에 아예 직장을 그만두셨어요?
☏ 김상민 > 예, 서울에서는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서 아시다시피 불법 천막이라고 너무나 압박을 가해오기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앞으로 해야 될 일들이 너무나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제 일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2월부터 지금 쉬고 있습니다.
☏ 진행자 > 그러면서 진상규명 그 다음에 특별법 통과 촉구 활동, 이런 것들을 계속하고 계시는 거고.
☏ 김상민 > 예.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따님은 아버님한테 어떤 존재였어요?
☏ 김상민 > 우리 연희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커왔고 모든 아빠들이 그렇듯이 딸들은 아빠한테 너무나 귀엽고 소중하고 애교 많고 항상 전화하면 아빠한테 애정 표현을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많이 해주고 너무나 소중하고 저한테는 사랑스러운 딸이었습니다.
☏ 진행자 > 따님이 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 김상민 > 참사 이후 우리 연희가 자꾸 생각나면 옛날 앨범 사진을 한번 들여다보다가 또 옛날 통화 내용을 스크랩 해놓은 걸 한번 캡처해놓은 거를 보기도 하고, 또 그래도 허전하면 공원묘지 가가지고 묘석을 만지고 어쨌거나 옛날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 진행자 > 그래요. 따님이 정규직으로 취업한 지 3개월 만에 변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아버님.
☏ 김상민 > 예, 우리 연희는 코로나 시대에 대학을 졸업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코로나 시대라 졸업장도 못 받고 우편으로 받았거든요. 그래서 또 서비스업 학과를 졸업해서 취업도 어려웠어요.
☏ 진행자 > 코로나 때.
☏ 김상민 > 예, 그래서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일을 하다가 작년 8월에 서울에 있는 조금 큰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 진행자 > 얼마나 좋았을까.
☏ 김상민 > 예, 너무나 연희도 기뻐하고 저도 대견하고 너무 기쁘고 좋았습니다. 서울에 가서 자취방을 얻어주고 이렇게 오고 그랬는데
☏ 진행자 > 그러고 나서 3개월 만에 변을 당한 거예요.
☏ 김상민 > 예.
☏ 진행자 > 따님이 변을 당했다는 소식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 김상민 > 10월 29일 저녁에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핼러윈 행사 뉴스가 나왔는데 약간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사람들이 너무나 평상시보다 많이 모였다 그런 생각을 해서 느낌이 이상했어요. 저도 하도 일과가 피곤해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뒤척이다가 새벽 4시에 깼어요. 그런데 어제 일이 생각나서 얼른 TV를 켜보니 희미한 골목에서 CPR하는 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너무나 당황스러워가지고 우리 연희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전화 연락을 할까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든 딸 가진 부모들이 그렇듯이 딸이 이렇게 고이 잠든 시간이라 4시는 바로 전화도 못하고 아침까지 6시까지 기다렸다가 잠을 충분히 잤겠지 그렇게 딸이 걱정돼서 6시에 전화를 했더니 웬 청년이 전화를 받더라고요. 그래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이태원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주웠다, 이렇게 말을 들었고 직감적으로 우리 연희가 이태원에 갔고 이런 참사를 당했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 진행자 > 모르는 청년이 받아서 주웠다, 핸드폰을.
☏ 김상민 > 예.
☏ 진행자 > 그렇게 돼서 따님 찾아 나섰던 거고요.
☏ 김상민 > 예.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요거 한번 여쭤볼게요. 이상민 행안부 장관 있잖아요. 직무에 복귀한 뒤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참사 직후부터 유족과의 만남을 희망해 수차례 제안했고 했지만 유족들이 거절하고 있다 이렇게 밝힌 바가 있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세요? 아버님.
☏ 김상민 > 글쎄요. 단순히 발언만 보면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상적인 공무수행을 하고 있고 유가족들이 왜 거절하지? 이렇게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참사 초기에 우리 유가족들이 가족과 자녀를 잃고 너무나 고통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그리고 우리 유가족들이 모임이 결성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몇 분에게 접근해서 또 공적인 장소가 아닌 사적인 장소에서 만남을 추진했던 걸로 나중에 언론을 통해 알게 됐어요. 유가족들이 부담스럽고 당황스럽고 아니 다른 가족들도 함께 만나냐 했더니 아니다. 개별적으로 만난다고 하니까 부담스럽다 나중에 다른 가족들과 함께 만나고 싶다. 그래서 지금 개별적으로 안 된다 이렇게 거절했던 거를 나중에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오퍼하고 있는데 왜 거절하냐 그러는데 아시다시피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대한민국의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사 직후에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참사 예방도 당연히 제대로 하지 않아서 우리 159명의 아까운 청춘들을 잃고 참사 이후에도 소방대원이 처음 그 현장에 도착했을 때 너무 애로했다고 했습니다. 경찰 한두 명밖에 안 보이고 어디 희생자들을 이렇게 놓을 데도 없고 이 부상자들을 어떻게 이송할 수 있는 통로도 안 보이고 너무나 아수라장이었고 너무나 엉망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진짜 후속 조치조차 제대로 못 한 행안부 장관을 저희는 지금 참사 이후 300일이 지난 지금까지 처음에는 진짜.
☏ 진행자 > 어떤 말씀이신지 전달됐을 것 같고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짧게 따님한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짧게 부탁드릴게요. 아버님.
☏ 김상민 > 연희야 아빠의 딸로 우리 가족의 막둥이로 태어나서 너무너무 고맙고 너무나 짧은 인생이었지만 건강하게 성인이 되어서 고맙고 우리 가족은 그동안 연희와 함께해서 너무나 행복했다. 연희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감사합니다.
☏ 진행자 > 아버님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들어야 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아버님.
☏ 김상민 >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 진행자 > 희생자 김연희 아버님 김상민 씨였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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